그날, 그와 만나 데이트하고, 어느덧 시간이 늦어져서
우리집까지 같이 가던 중이였다.
집에 가는중에 작은 어린이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잠깐. 저기 앉았다가 갈래?"
내키지는 않았지만, 금방 일어서겠지..하는 생각이 그러자고 했다.
해도 지고 노는 아이들도 없는 놀이터는 황량하기만 했다.
그런 분위기가 좀 어색하기도 했고,
행여나 아는 누가 볼세라 얼른 일어나고 싶었다.
나의 이런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갑작스레 내 손을 덥석 잡았다.
' 헉.... 뭐..뭐야....'
좋은 감정은 있었지만, 그동안 손한번 잡지 못한 사이였다.
요즘 세상에 손 잡는게 뭐그리 대수냐고 여길지 몰라도,
나에겐 대수였다.
천연기념물이였던 나에겐...남자의 커다란 손이 내 손을
덥친다는게, 1년이 걸리면 걸렸지..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만의 감정이 도취된듯...흠칫 놀라는 내 얼굴을
못 본것 같았다..
당장 프로포즈라도 하는듯...상황이 그랬다.
" 지은아...나는 니가 참 좋아..너는..?"
"네..? 그..글쎄..그게..."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실제는 당연하고,연애 이론도 전혀 몰랐던 나였지만,
이런건 싫었다.
당연히 남자가 손을 잡으면 나도 뿌듯하고 좋아야 하는거 아닌가?
서로 느낌이 통해야지..혼자 좋다고 하는건 뭐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민망해 할까 싶어 얘기 끝나고 집으로 올때까지도 내색하지 않았다.
집에와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로 좋아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면..그게 무슨 사랑일까..
연락을 끓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게 참 냉정하고 미안했지만, 나는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그가 우리집으로 전화를 했다.
깜짝 놀랐다.
"지은아..너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러는거야?"
"저기요... 우리 그만 만나요..미안해요.."
"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거야? 말해봐.."
"그건 아니구요...그냥, 선배가 부담스러워졌어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만나길 바랬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고,
그후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 4년은 막을 내렸다.
아쉬움도 많았고... 좋은 추억을 간직한채, 나는 사회로 나왔다.
단짝 은정이는 캐나다 연수를 떠났다.
많은 친구들은 연수를 떠나거나,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로
뛰고 있었고, 몇몇은 학교에 남아 석사학위를 딸 예정이였다.
나는 어린이 영어강사가 되었다.
아는 선배로부터 제의를 받고 컴퓨터 회사에 취직을 해봤지만,
나와는 맞지가 않아 그만두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참 좋았다..
너무 귀여운 1학년 아이들..
선생님을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그 아이들이
너무 좋았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2~3학년 아이들..의젓한 5~6학년 아이들..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었다.
매일 예쁜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즐거웠고,
연애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이 없었다.
그냥 운명이 맡길 뿐이였다.
우리학원은 아랫층에 속셈반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 속셈선생님이 나랑 동갑이여서 친하게 지내던 차였다.
어느날, 김선생이 그런다.
"자기! 내가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줄까?"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후훗..."
"진짜로..농담 아니야...이선생 아직 애인 없잖아.."
"칫..."
나는 그동안 소개팅에서 잘된적이 없던터라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내가 말했잖아..나 소개팅은 별론데..."
"에구..참내..한번 만나나 봐...아니면 말지..뭘..
이제 애인 하나 있어야지, 결혼도 해야할거 아녀.."
털털한 김선생은 그냥 만나나 보라고 성화였다.
못 이기는척 날짜를 잡았다.
만날 사람은 김선생 시동생의 친구라고 했다.
나는 기대도 안하고 최대한 수수하게 하고나갔다.
그냥 긴 생머리에 하얀 티에 청바지..그게 전부였다.
'이런 내 모습이 싫다면, 그건 나랑 인연이 아닌거지..'
저기 양복을 빼입고 나온 사람이 보인다.
김선생..그 시동생..그럼 저 옆에있는 저 사람???
허걱... 이럴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