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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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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kz0310 2003-03-04

여름이란 계절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녹녹해진 아스팔트위로 차들이 파묻혀 달리고, 머리위로 곧바로 내리쬐는 햇빛을 막을수 있는건 손바닥 한 장 뿐이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선글라스라도 챙길 걸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양산을 쓰면 나이가 훌쩍 먹어버린 듯 느껴진다. 어린시절 고이 모셔둔 양산을 쓰고 진하지 않은 화장을 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길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즐거웠다. 간간히 올려다본 어머니의 얼굴은 참 고왔다. 양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려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눈을 위로 뜰 수가 없다. 저 햇빛! 무섭다. 속은 너무 울렁거린다. 어젯밤 그녀는 혼자 분위기를 잡고 과음을 했다.
“야. 너 알콜 중독이니?”
“아니. 난 말짱해.”
“혼자 술 마시는 버릇 안 좋은 거다. 알콜중독자의 특징이 혼자 술을 마시는 거래.”
“난 혼자 술마시는 게 좋아. 그건 알콜 중독과 전혀 관계가 없어. 왜냐면, 오늘은 너무 더웠 어. 거기다가 하루 종일 신과장놈이 얼마나 사람을 들볶아 대던지. 정말 멸치 될뻔 했잖니. 그 자식은 왜 나만 갈구는거야? 그 자식 때문에 이렇게 더운 날 세시간은 넘게 걸어 다녔 을거야. 오늘 같은 날도 외근을 보내는 거 있지. 그것도 바쁘지도 않은 일로. 꼭 그 자식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나, 걷지 못하게 더운날 외근 가라고 그런다. 내일 가면 안되 느냐고 그러면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며 안 갈수 없게 만드는거야. 오늘 맥주는 진짜 시원하다.”
“시원하냐?”
“그래. 집에 오자마자 찬물로 샤워하고, 개운하게 앉아서 맥주한잔 하는거야. 올래?”
“아니. 더워서 나가기 싫어. 나도 샤워할래.”
“그래라. 난 맥주 딱 하나만 더 먹고 잘란다.”
민주는 어제 꽤 취했다. 아침이면 출근을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출근해선 앞으로 들어갈 돈을 걱정하고, 저녁이 되면 스트레스와 피곤을 이끌고 만원버스에 실려 그녀만의 옥탑방으로 들어오는 일이 질렸다. 거기다 어젠 너무 더웠다. 뉴스에선 올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는 방송을 했다. 불쾌지수가 90이 넘는 날씨니, 더운 날씨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던 까뮈의 이방인도 이해가 되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다. 아침에 손가락을 넣어서라도 토해볼걸 후회했지만, 늦게 일어나 머리도 못 감았으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오늘따라 지갑엔 달랑 이천원 뿐이다. 회사까지 택시를 타면 오천원은 있어야 하는데 토할 것 같아도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더운 것 같다. 벌써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고여 얼굴을 탄다. 브래지어 사이에 머리카락이 걸렸는지 간지럽고, 미칠 것만 같다. 사람들만 없다면 손을 넣어 확 빼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날은 출근이고 뭐고 시원한 계곡에 가서 발이라도 담구고 싶지만 그것도 다 팔자 편한 사람들 말이다. 결혼한 미경이가 어제 전화 와서 여름휴가 언제냐고 물어 벌써 끝났다고 했더니, 자기는 내일부터 남편하고 하와이 가기로 했다나. 부곡하와이 가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회사에서 우수사원으로 뽑혀 공짜 항공권과 호텔숙박권이 나왔단다. 그래서 애 맡기로 친정 간다나.
미경이는 벌써 비행기를 탔을까?
하와이 아니라 그냥 하루 쉴 수만 있다면 더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다시 집으로 가서 토하고 나올까? 그러다 버스가 와버리면 지금도 지각인데 큰일이다.
버스가 왔다. 역시나 오늘도 만원이다. 며칠 전 스포츠 신문 ‘오늘의 유머’란에 만원버스 내용이 있었는데. 시골할머니가 아들집에 다니러 서울로 오셨다. 아들은 오후 6시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는 고속버스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퇴근시간이라 분명 만원버스일 것이니 꼭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서 집까지 오시라고 했더니 어머니 왈, 무슨 서울은 버스값이 만원씩이나 하냐던. 그 얘기가 생각난다.
버스는 출발했다. 운좋게도 의자 모서리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설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그녀 앞 의자에 앉은 사람은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몹시 비만한 몸에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쳐내고 있다. 다리는 있는 대로 벌리고 앉아 비좁아 보인다. 점점 속이 울렁거린다.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할수록 그녀의 위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이러다간 버스 안에서 실수를 할지로 모를 일이다. 벨을 얼른 눌렀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려는 순간 버스는 급정거를 했다. 그때 그녀는 급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위액이 비만남의 허벅지로 쏟아지고 말았다.
“이게 뭐야?”
뭐라 말하고 싶지만 그녀의 위는 자꾸 위액을 분출하려 든다.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얼른 버스에서 내려 길바닥에서 시원하게 모든 위액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