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홍역치른 사람처럼 기력이 없다. 얼마전에 만난 동규때문에 지영의 마음은 마치 거센 태풍을 맞은듯한 그런 심정이다.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사랑을 뒤늦게 고백한 동규가 오히려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경호는 지영이 며칠 몸져 누워있자 병원을 함께 가자며 성화다. 그렇잖아도 몸이 약한 지영을 늘 애처롭게 바라보던 경호는 지영의 수척해진 모습이 마냥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모습들조차 지영은 모두가 불편하고 짜증스럽다. 자기 자신조차 분별할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그저 조용히 혼자있고 싶을 뿐이다. 지영은 며칠동안 핸드폰을 꺼 놓았다. 동규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기에.. 그날 밤 뜻하지 않았던 그 순간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영은 동규의 전화가 왠지 부담스럽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마음이 진정된 지영은 동규에게 전화를 걸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듯 씩씩한 목소리로 이야길한다. "그날 잘 들어갔니?ㅎㅎ" "지영아..왜 전화가 안됐던거야?..핸드폰이 꺼져 있던데.." 지영의 전화만을 기다리던 동규는 대답대신 그렇게 따지듯 물었다. "아..그랬나? ..ㅎㅎ" "걱정했잖아..괜찮은거지?" "그럼~너 그날 많이 취했던데..너도 잘 들어갔지?" "지영아?." "응..." "나..그날 안취했어." "........." "내가 한말 다 진심이다.." "알았다알았어..너 아직도 헤메는거보니 아직도 술 덜깬거 맞네뭘~" "얌마~난 술에 취한게 아니라니깐.." "그럼?" "난 너한테 취한거야.." "윽~닭살~ 하하 너 사람 꼬시는거 여전하구나..역시 선수 맞다니깐~" "쟈식~또 빠져나가긴...허긴 넌 예전에도 그렇게 잘도 빠져 나갔지.. 순진한 난 항상 그런 너한테 당하기만 하고..휴~~" "어머..참내..ㅎㅎ.." "지영아~~~" "왜?" "지영아~~~" "야! 너 자꾸 그렇게 징그럽게 부를래?" "ㅎㅎ지영아~~~~." "왜구래~~~" "보고싶다!!.." 순간 지영은 동규의 보고싶다는 짧은 말한마디에 잠시 할말을 잃는다. "보고 싶다고~지영아~~" "야~요즘 일 괜찮니? 불경기라고 난리던데.." 지영은 애써 또 딴소리로 화제를 바꾼다.. "거봐..뺀질이 맞다니깐..또 빠져나가는거 봐.." "ㅋㅋ그러니까 너또 쓸데없는 소리하지마..알았지?" 이상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동규는 지영의 마음속에 점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지영은 그럴때마다 자기자신을 끔찍히 아끼는 남편에게 미안했고 그런 자기 자신에게마져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차라리 남편이 조금만 자기를 덜 사랑해 주었더라면 자신이 이토록 괴롭진 않을텐데 하는 말도 안돼는 억지를 부려본다. 어느 날 경호은 집을 떠나 며칠동안 취재를 떠나느라 분주하다.. 그렇게 집안에 혼자있게 된 지영은 남편 경호의 전화가 아닌 동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고는 순간 깜짝 놀란다. 이래서는 안돼... 서로가 가정을 가진 우리가 친구가 아닌 사랑의 감정으로 다시 만난다는건 남들이 쉽게 말하는 불륜일 수 밖에 없는거야..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말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미 동규가 사랑을 고백한 이상 다시 우정으로 되돌릴 수 없듯 지영은 동규와의 우정속에 사랑을 지켜나가기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동규의 전화를 주고 받으면서 지영은 이제 그런 자책감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젠 동규를 일상속에서 그만 잊기로.. 더 이상 소모할수 없는 사랑을 붙잡고 있는다는건.....욕심이야 결국엔..결국엔..서로에게 씻을수 없는 불행을 가져 올지도.. 몰라... 소년 소녀시절에 만난 동규와의 순수한 우정을 그렇게 무너뜨릴 순 없어.. 우리의 우정을 아름답게 간직하려면.. 그 선택만이 영원할 수 있을것 같기에.. 지영은 그렇게 찹잡한 마음을 다지곤..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동규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