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골항아리를 친정아버지의 묘옆에 묻고 우리 삼남매는 각각 다른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유달리 많이 울던 남동생내외와 오빠를 보면서 내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살아계신 동안 더 따뜻하게 해 드릴 걸...'
도대체 엄마와 나는 왜 그렇게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을까?
엄마는 나와의 마지막 정을 띠려고 그렇게까지 음식타박이 심했었나 보다. 죽음앞에서는 원수가 없다더니 그렇게도 부담스러워 하던 엄마가 죽고 나서 다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씁쓸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이모가 말씀하셨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많이 시련을 받아서 성격이 급해지고 화가 많아 그렇지 독하지도 못하면서 자식이나 동생인 나에게도 인심만 잃었지 뭐. 내가 여고때 좀 잘 사는 친구들 우리집에 데리고 오면 너희엄마가 친구들 가고 나면 너는 수준도 안 맞으면서 그런 아이들과 놀러다닌다고 야단치곤 했는데 돌아가시기 전날 꿈에서 말야. 내가 그 친구들 데리고 예전 외할머니 사시던 집에 가니까 엄마가 된장찌게랑 맛있는 것 많이 해 가지고 정말 한 상 잘 차려주시더라."
이모는 한 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입을 여셨다.
"아마도 가기 전에 나하고 부딪힌 일들이 마음에 걸려서 할 일 해주고 가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게 아마 엄마 본심일 거다. 우리 자매가 외할아버지 6.25나자마자 돌아가시고 강한 외할머니 밑에서 얼마나 혼나면서 자랐는지 아니? 또 니네 아빠 만나서 사업 자리잡힐 때까지 고생하고 오빠는 어려서부터 아파서 병원 수시로 들락거려야 했고 한창 자리잡고 살만한 무렵에는 왜 그리 화가 많은지 형부와 니네들하고 계속 부딪히고 그러다가 형부 아프시고 또 오빠네 그렇게 되고 한이 많은 사람일게다 아마도..."
자식이 커가면서 어느 순간 부모가 작아보이기 사작할 때가 있다. 그게 아마도 사춘기일게다. 우리 엄마는 나를 때려서라도 어쨋든 나를 눌러야만 했다. 나는 말대답할 때까지 하다가 결국은 마음 속에 풀리지 않은 분을 지닌 채 엄마와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학교갔다오면 내 방에서 공부하는 일이 제일 편안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았으니까. 엄마와 부딪힐 일도 적었고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아이가 꼭 나와 붙어 자려고 하고 젖가슴을 만지작거리고 입에 뽀뽀를 해댈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너는 다 큰게 그러고 싶어?"
"왜 엄만 어때서."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엄마에게 그랬던 기억들이 없다.
연연생인 오빠가 굉장히 많이 아파서 이모댁에서 거의 내 유년시절을 지내다시피 하다가 국민학교 입학하려고 우리집에 가면서 안 가겠다고 떼써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엄마와 나 사이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