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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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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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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BY fragrance 2003-02-27


아버지는 온 몸이 차가울대로 차가와지고 굳은 후에도 마지막 숨을 거두지 못하시고 잊어버릴 때쯤이면 거친 숨소리가 다시 새어 나오시곤 했었다. 만 하루가 지나고서야 어렵게 숨을 거두신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나는 이상스럽게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차라리 편안히 빨리 눈감으세요. 아버지! 이 세상에 한이 많으시더라도 차라리 가시는 것이 편안한 길이라면 빨리 눈 감으세요."
모인 식구들은 면회시간이면 하루에 2번씩 중환자실에 누워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무언지도 모를 몇 개의 호스를 꽂고서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는 엄마를 면회했지만 그 누구도 엄마가 의식을 다시 회복하시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병원에 들어가신지 3일째 되는 날 병실에 들어갔다 나온 오빠는 넋이 나간 모양으로 나와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우리 엄마 정신력 대단해."
"왜?"
"내가 엄마가 눈을 뜨신 것 같아 엄마 집에 갈까 하고 물으니 슬그머니 손이 올라와서 내 손을 잡는 거야. 우연이겠지. 반사작용이겠지 싶어 2번을 더 물어보았는데 역시 내 손을 잡는 거야."
"간호사들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그 사람들이야 다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이라고 하지. 어떻게 다 죽어가는 노인네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니?"
오빠는 조금 있다가 말했다.
"다들 올라가세요. 아무래도 오래 끄실 것 같으니..."
그 날 밤 오빠는 밤새도록 심한 몸살에 시달렸다. 죽어가는 엄마를 앞에 두고 몸 건강한 우리는 하루 세 끼를 먹으면서 때로는 웃으며 하루에 두 번 엄마를 면회하는 것이 주요 일과였지만 하루가 가면 갈수록 다 지쳐갔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을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모는 말씀하셨다.
"꿈에 외할머니를 보았는데 엄마를 데려가기는 데려갈 것 같아. 할머니가 급하게 나무와 벽돌을 끌어다가 집을 짓고 있는데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았더구나. 방 안에는 예쁜 화개장이 있고 짐이 한 구석에 잘 쌓여 있어서 엄마 이건 누구거야 하고 물으니 니네 언니 거라고 하시더구나.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짐이 있었는데 그건 내 것이라고 하시더라."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실 때조차도 힘드시구나.그렇게 모질고 악한 분들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리 일이 자꾸만 어렵게만 되어가는 건지...'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오빠와 틈틈히 통화를 했는데 엄마는 이제 인공호흡기 대신 산소호흡기로 바꾸었다고 했다. 상태가 좋아지는 것도 같다고. 정말이지 긴 싸움이 다시 시작될 것 같았다. 설겆이를 하면서도 음식을 만들면서도 나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전 잘 모르겠지만 당시의 뜻대로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끝내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