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목소리는 조금 겁에 질려 있었다.
"엄마가 이상하시다. 밤새 팔을 내저으며 엄마 엄마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처음에는 뭔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큰 똥까지 누셨다. 도저히 엄마상태로는 볼 수 없는 변인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는 침대옆 탁자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5시가 좀 못된 시간이었다.
"오빠! 그렇게 위험한 상태야?"
"지금은 조용히 주무시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 밤새 기다리다가 지금 전화거는 거야. 서두르지는 말고 왔으면 좋겠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손위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은이가 학교갔다 오면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참 이상하다. 시집식구인데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남편보다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먼저 걸게 된다. 아마도 같은 여자이기 때문일게다. 안다고 한들 정은아빠가 아이때문에 자기 할 일 접고 일찍 들어와 줄 사람이 아닌 것은 진작에 알고 있으니 부탁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아이에게 학교갔다오면 고모집에 가라고 단단히 이르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집안을 서둘러 정리하고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갔다.
다행이도 더 이른 표로 바꿀 수 있어서 생각보다 일찍 비행기에 올랐다.
'정말 돌아가시려나.'
예전에 큰 올케가 사주푸는 집에 가서 물어보면 엄마는 다른 복은 없어도 먹는 복과 수명복은 타고났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오빠에게 들은 정황으로는 가시기 전에 노인들이 마지막 보신다는 검은 똥을 분명 누신 것 같았다.
나는 내 가방에 들어있는 사라다재료를 넣을 둥글고 조그마한 빵봉지를 보며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오빠는 전화를 끊으면서 당부했다.
"내가 엄마 먹고 싶다는 건 다 해 드렸는데 잘 넘어가는 사라다빵을 찾는데 그건 어디서 살 수도 없고 내가 만들지도 모르니 시간있으면 사 갖고 와라."
지독히도 착한 사람이다. 강한 올케와 그에 못지 않은 엄마사이에서 얼마나 시달렸을까? 말재주도 없는 사람이 어느 한 쪽 제대로 다독일 수도 없었을테다. 나는 택시를 타기 전에 급하게 동네 베이커리에서 빵을 샀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면 병원에서도 밥은 안 드셔도 사라다빵은 드셨으니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택시를 잡아타고 원룸에 들어서서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나는 너무 놀랬다. 얼굴색이 누렇게 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두주일만에 저렇게 나빠졌을까? 내가 들어서서 엄마를 부르자 눈을 어렵게 뜨셨다.
하지만 정신은 너무 맑으셔서 나도 알아보고 말도 비교적 잘 하셨다.
"엄마, 사라다빵 해 줄께."
"오빠는 엄마 괜챦은데 왜 오라고 난리야. 무슨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아."
"엄마보고 너 오라고 하냐고 물어보니 그러라고 하셔서."
듣고 있던 엄마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벽보고 담배만 피고 있고 나하고 말도 안하고... 네가 오니까 재깔재깔 너희들 소리가 나고. 너희들 어려서 마포집에 살았을 때처럼."
엄마는 그 날 아침 평상시의 몇 배나 되는 식사를 하셨다.
누른 밥에 오빠를 시켜 담갔다는 동치미에 내가 아직 부치지 못하고 갖고 있다가 가져간 한약 한 봉에 콩나물국까지.
"엄마 그만 먹어 체하겠어. 갑자기 왜 이래."
"나 먹어야 돼. 많이 먹어야 돼."
그리고 나서는 내가 만든 사라다빵은 배부르니 이따가 먹겠다고 하셨다.
일어나시기도 귀챦아하던 엄마는 오빠보고 양치질 해야한다며 본인 손으로 물을 흘려가며 이까지 닦으셨다.
그리고는 막내동생에게 전화를 걸라고 하셨다.
"그것들 괘씸해. 전화걸어 할 말 있어."
"엄마는 말소리도 제대로 안 들리는데 일하는 아이한테 전화는 왜 걸라고 해."
나는 지금도 그 때 전화를 걸어주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아마도 마지막 유언이었을 텐데.
내 생각에 엄마가 오늘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았다. 정은이 때문에 걱정은 되었지만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