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엄마는 날로날로 허물어져 갔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병이 나으리란 소망을 버리지 않는 엄마가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폐에 구멍이 ?돋?기흉이라는 병은 젊은 남자들이 많이 걸리는 병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수술을 하면 간단히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의사들이 엄마를 퇴원시키지 않는 이유는 몸이 회복되면 수술을 해보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엄마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었다. 의사선생님과 상담끝에 해가 가기전에 휴대용 비닐주머니를 단 채 엄마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퇴원을 하면 아무래도 감염 등 돌아가실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약없는 병원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딸들이 나이 든 친정엄마를 보면서 제일 안 되어 보일 때가 그렇게 지극정성을 다해 기른 아들에게 대접받지 못할 때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는 설문조사내용이 생각난다.
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엄마의 두 아들들이 정말이지 원망스러웠다. 막내동생내외는 빚보증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혹시 엄마를 떠맡게 될 까봐 출석부에 도장찍 듯 엄마생일과 추석때 등만 나타났다. 나는 내년 봄이면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한 1년간 갈 예정이어서 어떡해서든 그 전에는 오빠가 있는 제주도로 엄마를 보내드리고 정리를 해야했다.
착해빠진 우리오빠는 전화를 걸어 내가 하소연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답변이었다.
"너 미국갈 때까지만 책임져라."
사람이 화를 내다가 어떤 도를 넘어서면 '내 팔자지."하며 체념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나는 그 때 알았다,
남동생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엄마를 이모와 함께 퇴원시키면서 나는 한숨이 나왔다. 몸은 있는대로 망가졌으면서도 아직도 자존심과 성격이 강해서 간병아주머니들조차 힘들어했던 엄마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몸도 돈도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엄마와 가장 말다툼이 잦았고 잘 맞지 않는 내게 하나님은 엄마를 맡기셨을까?' 내 머리속에는 늘 '엄마니까. 나는 배운 사람니까.' 끝까지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막연한 의무감뿐이었다.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면 차라리 덜 괴로울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참 받는 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며느리들에게 어떤 때는 도를 넘어서서 마치 다른 친정엄마들이 딸 챙기듯이 챙기면서도 한 번 화가 나면 마구 해대는 성격이어서 그 동안 공든 탑을 다 무너뜨리곤 했다. 돈 씀씀이가 커서 불안해보이는 큰올케도 오빠도 엄마도 다들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내가 옆에서 본 세사람은 늘 갈등투성이었다.
친정아버지가 아프시지 않고 따로 살았다면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감정의 기복이 더 심해지셨다.엄마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새로 태어난 조카를 기르는 일인 듯 싶었다.
어쩌다 춘천에서 서울에 있는 우리집에 올 때면 오빠의 둘째아이인 조카아이를 업고 왔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직장문제로 춘천에서 잠시 살았을 때 내 딸아이를 보아 주시다가 더 이상 못보겠다며 직장으로 전화를 거신 엄마를 떠올렸다.
대학졸업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가 없었기에 직장을 잡았고 결혼도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기죽고 살고 싶지 않아 고생길이 뻔한데도 사람만 똑똑하고 성실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남편을 택했다.
엄마는 도대체 내 생각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이를 봐 주다가 힘들 때면 내게 온갖 소리를 다 해대며 내 결혼조차도 못마땅해 했다.
아마도 친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결혼을 했으면 싶으셨을 게다.
엄마가 퇴원하고 이주일쯤 지나 오빠가 제주도에서 올라왔다. 내가 전화로 누누히 설명했지만 6월에 일주일 다녀가고는 엄마를 본 적이 없는 오빠는 처음 엄마를 본 순간 얼굴색이 변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쁘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몇개월과 비슷하다고 했다. 자기가 보기에는 1년을 넘기시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금방 엄마를 모셔갈 줄 알았던 오빠가 자꾸만 머뭇거리며 내눈치를 살폈다. 큰 올케가 더 이상은 같은 집에서 살 자신이 없다면 따로 방을 얻어 오빠보고 왔다갔다 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엄마는 따로 떨어져 혼자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아마도 가슴이 답답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