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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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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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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fragrance 2003-02-01

친정아버지가 아프시면서부터 내 생활은 많이 달라졌었다. 엄마는 한정된 돈으로 대학신입생인 동생을 공부시켜야 했고 결혼은 했지만 대학원에 다니느라고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한 오빠의 딸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다행히도 큰 올케가 손재주가 있어 등공예강사 등으로 다소의 수입이 있긴 했지만 우리식구는 아버지가 남기신 적은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참 별나서 우리가 넉넉하게 살던 시절에도 학교에 다녀오던 길에 아파트복도에 설치된 전기계량기를 보고 집에 뛰어들어와서 "전기 좀 아껴 써. 우리집 계량기만 엄청 빨리 돌아간단말야."하고 잔소리를 해대곤 했단다.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누구부다도 빨리 알아버린 나는 내가 쓸 돈은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잘 알았고 일류대학을 나온 탓에 아이들 과외를 해서 내 용돈을 쓰고 때로는 반액 장학금을 탄 동생의 학비를 도와주곤 했었다.
우리 엄마라는 사람은 표현에 참 인색했고 말재주도 없었다.
어느날 어떤 일인가로 내게 섭섭했었는지 정말이지 정 떨어지는 소리를 했다.
"이 년아! 시집갈 때까지 돈 좀 벌어 식구들 도와주면 시집갈 때 다 갚아주려고 했는데 니 년하는 걸로 봐서 기대도 못하겠구나." 하며 욕을 해댔다.
나는 항상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엄마라고. 밖에 나가면 인정받고 칭찬듣는데 별 실수 없이 내일 알아서 하는 내게 제일 인색한 사람은 늘 엄마였다.
그 때부터 나는 냉정해지고 싶었다. 자기일을 알아서 하고 사는 사람도 때로는 누군가를 붙잡고 엉엉 울고 싶고 하소연하고 싶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그 얄퍅한 자존심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데 왜 부모라는 사람이 나 힘든 건 하나도 생각해 주지 않는건지 엄마가 야속했다. 나도 오빠처럼 대학원 가고 싶고 철없는 동생처럼 밤늦게 술먹고 들어와 울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생겨먹질 못해서 가끔가다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뿐인데....
우리 외할머니는 딸 들과 아들 다섯을 낳으셨다는데 아들 다섯은 모두 어려서 죽고 이모와 엄마 딸 둘만 두고 계셨다.
할머니는 성격이 너무 강하셔서 딸 둘과 자주 부딪히셨는데 그럴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이 년들아, 내가 아들 하나만 살아 있었어도 지금 이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을 게다." 어린 나는 마음속으로 '살아있는 자식에게나 잘하지. 할머니는 매일 이집저집 다니면서 집안을 한번씩 들었다 놓으면서 .....'라며 중얼거렸다
9살된 하나 남은 아들이 6.25때 피난다녀와서 홍역을 앓다 죽었을 때 할머니는 따라 죽는다고 안방 아랫목에 머리를 박아대며 우셔서 아랫묵이 다 내려앉았다고 한다. 이모는 그 말씀을 하시며 옛날 기억을 더듬으셨다. '우리는 자식아닌가. 낳아 놓고 아들따라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라고...'하며 외할머니가 무책임해 보였다고 하셨다.
하여튼 엄마의 아들사랑은 외할머니를 닮아서인지 지독하다 못해 지나쳤고 그래서 우리집 아들들은 내가 보기에 너무 연약했다.
하지만 임종자식은 역시 아들 둘이라는 엄마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주 푸는사람이 그러는데 임종자식은 둘뿐이라더라."
유독 엄마와 말다툼이 잦고 의견충돌이 많았던 나를 엄마는 엄마의 임종자식으로 생각하지도 않으셨고 나 또한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으니까 유달리 야속할 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섭섭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