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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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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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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khl7137 200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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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다음 고백은 상우와의 교제가 박살났다는 말보다 더 충격이었다
연거푸 소텐 몇 잔을 비우고 난 영은 입을 뗐다.
[우리 아버지 ...두 집 살림한다]

영은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시고 엄마는 과일가게를 맡아 하신다. 금슬이 좋기로, 사람 좋기로 이름난 부부였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유별났다. 생리대를 직접 사다줄 정도로 각별했다. 집안일보다 장사에 더 열심힌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는 밥도 하고 청소도 했다. 스스로 즐기신다고 영은 믿었다. 자연히 영은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이 많았고 작은 고민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영에게 아버지는 모든 아버지의 우상이었고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옆집 사람들이 나들이를 갔다온 후 엄마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버지가 어떤 여자와 공원에 왔더라고. 다정히 팔짱을 끼고.

[잘못봤겠지 했어 그걸 누가 믿어?]

그 일은 일단 그렇게 넘어 갔다. 그러나 촌철살인이라고. 그 작은 일이 영의 가슴에 점점 의심의 구멍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찝찝한 건 참을 수 없어 하는 영이다. 택시 회사에서부터 아버지를 미행했다. 점심때가 되자 식당대신 한 주공 아파트로 향했다. 영은 기억해냈다. 매일 집에서 점심을 하시던 아버지가 밖에서 점심을 하기 시작한 게 한 십년쯤 되었다는 걸. 이유는 엄마의 일을 줄여 주고 싶다는 거였다.

[아닐거라고 되뇌이며 그 아파트 벨을 눌렀지...문이 열리자 얼른 안으로 들어 갔어. 그 순간 우리들 말로 꼭지가 돌더라]

그게 고1때란다. 엄마의 충격은 심했다. 그대로 기절을 했으니깐. 구이집하는 여자로 택시 안에서 만났다. 술에 취한 여자를 집가지 데려다 주었는데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남자들 상대로 술장사를 하지만 늘 남자가 그리운 여자였다. 친절한 아버지에게 반했고 쭉쭉방방 애교가 넘치는 여자를 아버지는 뿌리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십년이나 되었다. 아버지는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여자의 매력에 결심이 흔들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게거품을 물었고 영은 유일한 믿음이었던 아버지의 배신에 할말을 잃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버지가 아버지로 보이지 않을 뿐...

[하루도 아니고 일년도 아니고 무려 십년이나 우릴 속인 아버지가 가증스럽다 못해 무섭더라]

충격에서 헤어난 엄마는 담담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 영을 낳고서 엄마의 자궁이 약해 성생활을 제대로 하는 건 무리였다고 했다. 섹스를 할때면 엄마는 늘 아픔을 호소했고 그러다보니 자연 횟수는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차라리 다른 여자랑...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한결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배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나 그 여자 집 다시 찾아 갔다]

터지기 일보직전의 다이나마이트같은 마음을 안고 영은 여자 집으로 갔다. 여자의 머리채를 죄다 뜯어 놓고 살림살이를 닥치는 대로 부셔 버렸다. 여자는 어떤 방어도 하지 않았다.

영은 이혼을 하면 엄마와의 관계도 끝이라고 못박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 다정다감했다. 외로운 여자라고 했다. 엄마도 여자도 버릴 수 없다는 말에 영은 망치로 택시를 박살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서는 정을 여자에게서는 욕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 관계를 이해하기엔 영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 후 영은 아버지와의 대화의 창을 굳건히 닫아 버렸다.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영은 다른 남자를 통해 찾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남자를 본다. 영은 다른 누구보다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강하고 애절하고 또 필요했다.

술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이상의 말도 필요없었다. 까짓것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란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술을 따르고 마셨다. 간간이 담배에 불도 당겨 보았다. 니맛도 내맛도 없었다. 한 두잔 마시자 얼굴이 화끈거렸고 대여섯잔을 마시자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계속 마셨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영의 얼굴도 가물거렸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술도 담배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고꾸라진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함소리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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