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첫 번째 남자는 고3 여름방학때 만들어졌다. 영과 나, 영의 추종자 중 영미, 선애. 이렇게 넷이서 1박 2일로 경주를 갔다. 영의 추종자들은 나를 탐탁잖게 여겼고 거기에 대해 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굳이 그들 마음에 들려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들과 굳이 어울려 다니는 건 오로지 영때문이다. 그때까지도 난 영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외롭고도 묵직한 목마름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대입에 대한 긴장감을 잊기 위해서는 영의 낙천적인 성격이 필요했다.
경주에서 영은 조금의 거리낌없이 목좋은 모텔을 잡았다. 단돈 천원을 써도 깊이 생각하는 나와는 반대로 영은 돈 쓰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런 물질적인 풍요에 관심을 보이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으니깐.
항상 물주는 영이었다.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디스코텍에 갔다. 주민등록증이 있으니 당연히 출입은 가능했다. 난 그런 곳이 처음이었으나 티를 내지 않았다. 콜라만 홀짝이며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 대해 영은 어떤 제제도 하지 않았다. 처음임을 눈치챘으리라.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조명도 그러하거니와 내 또래로 보이는 애들이 구석구석에서 포옹하고 키스하는 걸 목격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보란듯이 흔들어대는 애들의 춤솜씨며 잘생긴 판돌이(?)까지... 그 순간 나는 외계인이 되어 있었다. 촌놈티를 내지 않으려면 눈을 내리깔고 태연하게 앉아 있는 방법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따라온 걸 후회해본들 이미...!
그곳에서 영은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첫 번째 남자를 만났다. 그도 우리와 같은 고3이었고 대구생이었다. 디스코텍에서 헌팅이라니! 난 한순간 창피해했고 껄끄러워하며 남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밤 12시에 우리는 보문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잔디에 앉아 서로 어느새 반말을 하는 친구들이 되어 있었다. 젊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 통한다는 건 그래서 좋은 것인가 보다. 같은 고3이니 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니 그 보다 더 잘 통하는 게 있을까...
영의 첫 번째 남자 이름은 상우. 영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을 정도는 남자는 말그대로 남자답고 지적으로 보였다. 나를 눈여겨 봐 주는 이는 없었다. 하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데 누가 좋아 하겠는가...
다음 날 우리는 함께 대구로 왔다.
영은 상우와 계속적으로 만나는 자리에 반드시 나를 동행시켰다.
[넌 내 남자한데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뭘 하던지 신경쓰지 않으니깐. 너에게 내 모든 걸 다 드러내 보여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길래...내가 뭘 해도 내 편이 되어 주고 이해해 줄 것 같아 넌. 난 네 눈빛이 마음에 들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비치거든...]
둘만의 데이트에 끼기 싫다고 했을 때 그녀가 한 말이다.
[그러지 말고 상우 친구 소개시켜 주라 그럴께. 넷이 같이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