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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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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khl7137 2002-11-23


장례식장은 썰렁하지도 그렇다고 북적대지도 않았다.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둥실한 얼굴로 미소짓고 있는 내 사랑하는 그녀의 사진이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도는 것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멈짓. 하고 서 있자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고2때 같은 반이 되면서였다. 대부분의 여학교를 보면 성격이 다소 터프하고 남성적인 여자애와 다른 애들과 분위기가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가진 여자애. 이 둘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여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전자에 속했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그녀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리더쉽이 강한 여자로 학생들에게나 선생들에게 인기 짱이었다. 단지 뒤떨어지는 게 있다면 공부였다. 개교 이래 공부 못하는 애가 반장하고 총학생 부회장 자리까지 오른 경우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카리스마가 분명하고 모두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나를 총무로 뽑았고 당연히 나는 거절함으로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중학교땐 반장까지 한 몸인데다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무시할까봐 죽으라고 공부만 한 내가 기껏 총무? 하는 자존심도 있고 해서 그냥 거절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영이었다. 나는 진이었다. 그녀는 나를 얼음공주라 불렀다. 찬바람이 쌩쌩 분다는 이유로... 나는 무시했다. 이 정도면 왕따를 당할만 할테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언제나 제일 뒷 자리를 고집한 나는 시험때면 뒤고 옆에고 앉은 농땡이들에게 서슴없이 답안지를 보여 주었으니깐. 그래서 의외로 내 편이 많았다.

영의 추종자는 많았다. 노골적으로 다른 친구들 만나지 말라고 쪽지로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 여자애도 있었다. 서로 오른팔 왼팔 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나를 불렀다.
[어이, 얼음공주. 수업 끝나고 나랑 데이트 하자]
[명목은?]
[명목은 무슨... 떡볶이 사 줄께. 알았지?]
종회가 끝나기 무섭게 영은 쪼르르 내게로 와 팔을 끌고 나갔다. 그녀의 추종자 몇몇이 따라 나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시끌벅적한 음식점 안으로 들어 갔다. 물어보지도 않고 그녀가 대충 음식을 주문하고는 추종자들을 소개했다. 건성으로 듣고 대답했다. 나를 초대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 먹고 보자. 너 이현동 살지? 나도 이현동이다. 이따 같이 가자]
멋대로인 그녀가 싫지 않은 건 어쩌면 그녀와의 운명을 예견한 탓이리라.

그녀는 추종자들을 떼내고 문구점으로 가더니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 볼펜을 가득 사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함께 버스를 탔다.
[너 처음 봤을때부터 마음에 들더라. 내 애인해라]
[너 미쳤냐?]
[음...첫 번째 마누라는 울산에 있는 내 소꼽친구고 너는 두 번째 마누라 해라. 응?]
그녀는 문구점에서 산 것들을 내 손에 안겨주었다.
[나한테 하고픈 말 있음 편지 해라]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여자였다. 강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섬세하고 여성스런 면에 난 다소 당황했고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그녀는 가끔 내게 편지로 하루 일상에 대해 적어 보냈고 공부시간에도 쪽지를 서서 날리곤 했다. 우리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첫 번째 남자는 고3 여름방학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