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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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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jeyamo 2002-11-19

침묵을 깨고 지혜가 말했다.
"점심은 네가 샀으니까 내가 커피 뽑아올께.기다려."
지혜가 커피 자판기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던 준희는 잔디에 누웠다.
기지개를 쭈욱 펴고 입을 한껏 벌리고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 마셨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햇살에 스르르 눈이 감기고 깜박 졸음이 몰려 오려는 순간 '부더더더'스쿠터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갑자기 천국을 빼앗긴듯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소음을 쫓아 스쿠터 주인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지혜가 커피를 들고 오며 말했다.
"너,블랙이지? 하여튼 무슨 취민지 몰라.너 블랙 많이 마시면 위장병 걸려."
"블랙이나 아니나 위장병 걸리긴 마찬가지야.그건 그렇고,캠퍼스 내에서 스쿠터 타는 인간들은 그냥 다 모아서 쓰레기통에 넣어야 된다니까?"
한창 흥분해 소리 지르며 열변을 토하는데 스쿠터 소리가 준희의 머리 뒤에서 멈췄다.
'어라? 그래 한마디 해야지.'
고개를 돌리려는데 지혜가 먼저 일어서며 말했다.
"어? 안녕.여기 웬일이야? 써클룸에 있을 시간 아니었니?"
'뭐야? 지혜 써클 친구야?'
그래도 할말은 해야 겠다는 생각에 준희는 벌떡 일어서 뒤로 돌아서며,
"이보세요......"
준희는 일부러 무서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다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준희가 돌아선 그곳엔 햇빛에 반사된 가지런한 새하야 치아만 보일뿐 아무것도 없는듯 했다.따가운 햇살 때문이었을까? 준희는 순간 눈을 감았고 어지러움에 몸이 휘청 거렸다.
'너무 갑자기 일어서서 그랬나?'
준희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으려는데 그 시끄러운 스쿠터 소리를 내던 남자가 준희의 팔을 부축하며 말했다.
"요즘 아가씨 답지 않게 잔디에 대(大)자로 누워 계시던데, 왜요?
어지러우세요? 철분약 좀 드셔야 겠네요."
준희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팔을 매섭게 뿌리치며 쏘아 붙였다.
"매너 없이 시끄러운 스쿠터 소리 낼때 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만 말하는 것도 참 싫으네."
싫은 소리를 하는데도 그 남자는 넉살좋게 잔디에 앉으며 말했다.
"긴 생머리가 참 잘 어울리시네요."
그 때 지혜가 불쑥 끼어들며,
"야! 넌 나는 안 보이니? 내가 아무리 키가 작아도 그렇지 말이야.
근데 ,써클룸에 애들 없어?"
"응.아무도 없길래 이 좋은 날씨에 야외 연습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찾아 보려고 나왔지.지금 스쿠터 타고 여기 저기 다니던 참이야."
그때부터 둘은 준희가 옆에 없기라도 하듯 써클 얘기만 계속했다.
그 덕에 준희는 그를 찬찬히 볼 기회를 가졌다.
'어이구,참.학생이란 게 하고 다니는 것 좀봐.웬 슬리퍼에 맨발?
저 머리는 왜 기른거야?완전 거지 같은 깡패 모습같네.'
혼자서 아무런 이유없이 그의 외모를 씹고 있는데 불쑥 그가 준희를 보며 말했다.
"지혜야,니 친구분 소개는 안 시켜 줄거니?"
""응 .....준희야 ,인사해. 여기는 같은 써클에 있는 친군데 기타리스트야.나이는 우리보다 두살 많고 학번은 같아.그냥 나이 초월하고 편하게 대하라고 해서 말을 놓긴 하는데 좀 찝찝하지.지금은 휴학 중이고."
"이름은 제가 직접 얘기할께요.전 김 경준이라고 해요."
경준이 내민 손을 거들떠 보지 않은채로 준희는,
"전 신 준희에요"
"준희라...이름이 아주 예쁘시네요.머리카락도 아름다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