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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침침한 밤인가보다.
옥순이가 잠자리를 본다. 그리고 남자의 시중을 든다.
"벗으세요.."
"내가 벗을께.."
"아니예요, 제가 해드리고 싶어요^^"
잠옷으로 갈아 입는 남자의 한쪽 다리와 팔이 무척 가늘다. 그렇구나 장애가 있구만...
"선생님, 외로우시지 않아요? 혼자 게시면.."
"좀 외롭긴 하지만 산천이 다 내친구고 상상의 날개를 달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내 속사람이 있잖아 허허"
허실하게 웃는 남자의 표정이 유유자적이다. 그래 현실에 자족하는 삶이야 말로 사람다움으로 가는 길이겠지.
"오늘은 제가 아주 기분좋게 해 드릴께요.."
"그래, 정말 기다렸지..음.."
"지난주에 제가 왔을 때에는 너무 서운했어요. 제가 그만 매직데이라서^^.."
'알지, 알아..그러나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는거야..이번주는 정말 옥순이의 살이 더욱 보드라울 것 같네^^"
점점 언어의 농도가 붉어진다. 하기야 잠자리에서까지 격식있는 언어를 구사한다면 재미는 반감 되는 것이지 않을까...
"저도 옷 갈아 입을께요.."
"그래, 그래야지..어서 갈아 입고 와"
불의 광도가 낮아진다. 색등이 거기도 있었다. 무드가 달콤하다. 새들은 달이 뜨는 밤에 둥지에 들어 사랑을 나눈다지. 무드가 좋아서일까..
옥순이가 옷을 갈아 입는다. 아름다운 요색 옷이겠지....
혹, 초록스커트는 아닐까? 그런 기대 속에 눈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옥순이가 입은 옷은 초록스커트. 스포츠의 열기를 돋우기 위해 응원하는 치어걸들이 입는 모양의 초록스커트...
"아, 이게 무슨....?"
난 신음처럼 뇌까렸다.
이 말을 윤식이가 들었나보다.
"뭐야, 뭔일 있어?"
"야, 이리와봐, 너한테는 안됐지만 이건 뭔가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해..?"
윤식이가 담배를 부벼 끄며 화면앞으로 다가 온다.
"아니...이건!..."
옥순이는, 옥순이는 그랬다. 선생님이라는 남자의 야윈 몸 위에서 초록스커트를 입고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낮익은 포즈로 익숙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더티한 사이트에서나 봄직한 동작이었다. 그것도 정말 열정에 가득차서 율동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행복해용."
"으으으 나도 정말 옥순이 아니면..."
둘이 어우러 진다. 자지러 진다.
"불꺼줘!"
"네.."
화면이 눅눅해 진다. 좀더 희미하게 보인다. 그림자만이 형상화 된다.
"으으으!"
"오오오 "
숨소리가 벅차다.
윤식이가 신음소리인지 미친소리인지 분간 안되는 소리를 지르며 일어 난다.
"야 임마 나 갈께!."
"이밤중에 어딜가?"
윤식이는 가버렸다.
화면 속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커진다.
초록스커트가 펄렁이고 그 아래에 누운 남자의 목소리가 견딜 수 없는 타락으로 점철되나보다.
"선생님! 너무 좋아요.정말 좋아요. 사랑해요. 죽도록이요..."
옥순이는 계속 나불댄다. 이제 사랑의 행위가 정상에 다다르려는 모양이다.
요동이 더 격렬하다. 불이 타오른다. 활활!
그들의 향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옥순이는 지금 그 남자에게 무얼 주고 있는 것일까?
다른 무엇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무얼까?
궁금증이 자꾸 쌓인다.
란같은 여자와 옥순이 그리고 남자들의 불편한 몸
공통적인 함수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일까?
이윽고 그들이 짐승이 되고 말았나 보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가 너무 신성해 보이는 건 왜일까?
두사람의 사랑이 매우 고와서 인듯도 하고, 옥순이가 남자에게 바치는 정열 때문인듯도 하고, 아니면 정상적인 사람들의 행위보다 너무도 헌신적이서 그런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사랑은 순간을 위해 영원을 파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잠시 잠깐의 향락을 위해서 영원히 가슴에 빼어버리지 못할 못을 박으면서 배우자를 숨기고 유희를 즐기기도 하고, 줄타기를 하지 않던가
요즘 이혼이 40%를 넘어선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마음에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자기 중심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의 인격 변화로 인해, 상대방을 존중해 줄 여유가 없는 심리적 장애가 심해진 탓이 아니겠는가..
이윽고 모든 사랑의 노래가 그쳤다.
풍경이 대비 된다.
희미하지만 란같은 여자의 초록스커트와 옥순이의 초록 스커트가 대비 된다.
그들의 움직임이 번갈아 클로즈 업 된다. 표정이 읽혀 온다.
아무래도 맨정신으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술이 올라 온다.
"여보세요..?"
전화다. 순미다. 별장여자 순미다.
"뭐하세요?"
"응...이제 자려고.."
"네..그냥 궁금해서요.."
"친구가 왔다가 갔거든..."
"네, 그래요. 그럼 주무세요..."
이 여자가 전화를 왜 했을까..
보고 싶다는 말인가..
그런 감이 문득 잡힌다.
"작품실 오늘 작품좀 많이 그렸나요?"
"네? 아, 작품실요.글쎄요...작품 보러 오시게요. 밤이 깊었는데^^"
"그냥,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네..."
"맘대로 하세요^^피곤하시지 않을까요.."
난 주섬주섬 방바닥을 챙겨 정리 했다. 그리고 화잘실로 들어 갔다. 얼굴에 물을 적신다.
치약을 짜서 이를 닦는다. 얼굴이 상기 되어 있다. 옥순이의 영상 때문이지 아니면 술 때문이지 정리가 안되지만 아무래도 전자인것 같다.
그래, 가보자. 이 긴밤을 나 혼자 보내기는 힘들잖아...
난 문을 잠그고 길로 나섰다.
택시로 가야지..금방 택시가 앞에 멈춘다.
"어디로 가시죠?"
"네, 둔곡리 아시죠. 송강지나서 연기 쪽으로 가는 마을.."
"거기까지는..."
"네, 충분히 드릴께요..염려 마시고 실어다만 주세요"
"네~"
택시가 간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남의 비디오 보고 환장하는 세대여!
작품실이 보였다 머릿속에서 ..그리고 순미의 그 풍요로운 땅에 곱게 자라는 풀들과 동산과 풋풋한 오아시스의 샘이 연상되어 내 머리를 채웠다. 아마도 그녀는 기다리고 있겠지..목욕재계하고...난 차창으로 스치는 사람들을 보며 콧노래를 불럿다. 옥순이의 영상은 금새 잊혀지고 앞으로 다가올 순미와의 낭만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 했다. 사랑은 참 즐거워! 짝이 있다는 건 행복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