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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속의 옥순이 2


BY 김隱秘 2003-01-03

밥을 짓는 옥순이의 모습이 보인다.
주목의 대상이던 초록스커트 대신 체형이 드러나는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참으로 정감이 있다.

하기야 아무리 산골이라도 이 시대에 문화의 사각이 있겠는가..
티비도 있고 전기밥솥도 있고, 냉장고에 전자렌지에 있을 것은 다 놓여 있다.
집 전체가 황토가옥이다. 색이 바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맷질을 한지가 오래 되지 않은 듯하다.
요즈음은 벽에 타일이나 석재를 붙이고 때론 페인팅을 하지만 예전에는 봄에 큰 다라이에다 황토물을 곱게타서 짚을 싹뚝 잘라 만든 칠하기 솔로 정금정금 담구어 굴뚝연기로 그을린 벽과 더럽혀진 면에다 바르곤 했었다.

선생님이라는 남자는 여전히 여유 있게 웃고 장난도 친다. 순하고 어질어 보인다. 나이는 아마도 마흔 후반이나 쉰 초가 될것 같은데 화면이라 분별이 쉽지 않다.
밥상을 차리는 옥순이의 모습이 바로 꿈의 화상이다.

"고놈은 잘 있나?"
"네, 학교 잘 다녀요. 처음에는 같이 오겠다고 했는데..학원 때문에 못왔어요.."
"보고 싶구만 다음엔 꼭 데리고 오지.."

동시녹음 정도는 안되도 음성이 들을만 하다.

"선생님, 이거요. 좋아하시잖아요.."
"그거 맛 있게 생겼네.."
"예, 제가 직접 삭였거든요. 이거 일주일 정도는 드실 수 있을거에요"

식사표정이 너무 곱다. 명주 옷 같다. 솜실을 풀어 놓은듯 하다.
이들의 행복의 원천은 무얼까..
식사가 끝나자 숭늉이 나온다. 그리고 과일을 깍는 옥순이의 능란한 칼솜씨(?)

윤식이 입에서 담배가 계속 화력을 높인다. 온통 천지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화염으로 가득한 방이 된다.
이제야 알겠지. 옥순이가 윤식이를 떠나 시집을 안가고 사는줄 알았지만 몰래 섬기는 남자가 있었음을...근데 이 남자의 정체는 누구인가?
무어이 그리 좋고 왜 지체 장애가 있는 이 남자에게 빠질 수 뿐이 없었을까? 무슨 사연이 있었겠지만 정말 궁금했다.
시디의 한섹터가 소모된 모양이었다. 곧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려나 보다.

"야, 너 저쪽에 가서 있어라. 내가 보고 나서 얘기해 줄께"

밤의 정경이 곧 그려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 장면을 윤식이가 다 본다는 건 너무 가슴아프지 않은가...

"야, 저쪽에 가서 누워 있어..."

윤식이가 술 한잔을 목에다 털어 넣고 벌러덩 팔벼개로 누워 버린다.

<병신 보다 못한 놈! 미친 놈 등신! 잘난척하더니...그렇게 완벽한척 하더니..>

윤식이에 대한 원망이었다. 저 꼴이 된 여자를 자기 여자라고 기다리면서 겨우 생각해 낸 것이 몰래카메라 같은 장치를 해서 무얼 하며 사는가에 대한 엿보기나 하려는 윤식이가 이렇게 못나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부아가 치밀었다. 윤식이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옥순이에 대한 배신감 같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는 않지만 하여간 너무 빌어 먹을 짓이라고 생각 했다.

"빌어 먹을! 에이!"

그러나 난 다음 화면을 보기 위해 플레이를 눌렀다. 아무래도 원색적인 그림들이 나타나려나 보았다.
눈을 감고 죽을 몰골이 된 윤식이는 침묵한다. 이제 나 혼자 화면을 봐야 한다.
참 어처구니 없는 구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이 무얼 말하는지 뭐라고 해야할 지 정말 이렇게 허무 맹랑한 짓거리를 왜 하는건지 한숨만이 나오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