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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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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BY 김隱秘 200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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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윤식이"
"응, 왠일이냐?"
"너, 지금 어디야?"
"나, 그냥.."

난 둔곡리에 와 있었다.
별장여자 순미와 작품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내가 작품을 좀 보고 싶다고 했다.

"내일 오전에 너희집에 갈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알겠지"
"무슨일로..?"
"응, 나왔거든.."
"뭐가.."
"보면 알아..."
"편집이 거의 다 됐다니까 내일 보자구.."
"응, 여하간 알았어. 기다릴께.."

윤식이 전화는 끊겼다. 언제나처럼 제말 다하면 내 할말은 듣지 않는 놈이니까...

"누구세요.?"
"아, 친구...내일 만나자고..."
"오늘은 아니죠?^^"
"오늘, 오늘은 못가지 누가 뭐래도.."

우리는 웃으며 손을 잡고 작품 전시실로 들어 갔다.

"선생님, 오늘은 왜 제 작품을 보시려고 하는거예요..?"
"글쎄..그냥 자세히 둘러보고 싶어서..."
"자세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호기심의 찬 눈으로 나를 본다. 눈망울이 사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솜같은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슴이 양털 같이 보드라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열된 그림을 따라 몇개의 홀을 지나니 촛불이 놓여진 방이다. 다른 방은 다 전기 조명인데 이 방은 조명이 없다. 무슨 작품이 있길래...

"여긴 조명이 없네..?"
"네, 여긴 촛불을 켜고 작품을 보는 곳이거든요.."
"그래..그럼 촛불을 켤까..?"
"네, 제가 켤께요.."

그녀가 굵고 붉은 양초와 흰색 양초가 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놓여진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금새 방이 환해졌다. 그녀의 얼굴이 고웁고 환하게 다가 온다. 미소가 나를 깨운다.
놓여진 그림이 세 점이다. 다가가 본다. 그린지 오래되지 않은 그림 셋..
바로 나의 모습,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다만, 가운데 그림은 아직 아무것도 그려 있지 않았다.

"'이건 나 아니야?"
"네.."
"이건 순미네.."
"네.."

그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소녀처럼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캔버스에 그림과 똑 같았다. 무얼 기다리고 있는....손을 모으고 기다림으로 서 있는 여자...
나에게서 그녀에게 남은 그림을 그리게 해야겠다는 충동이 갑자기 활화산처럼 일어 났다.

"순미! 그림을 그리게 해줄께.."

난 그녀를 부둥켜 안았다.
그녀도 격동한다. 숨을 할딱이고 있었다. 첫순정을 바치는 순간처럼 그녀가 떨고 있는것 같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촛불이 몸통으로 번져 불꽃심지가 점점 커지는가 보았다. 불은색 양초가 뜨거워 지고 촛농을 떨구고, 갑자기 어디선가 눈을 감아라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래, 사랑하면 그러는거야. 사랑하면 옷을 벗는거야. 그리우면 얼싸 안는거야. 보고픈걸 어떻게해. 다 벗어던지고 모두를 보여 주는거야. 감추는건 사랑이 아니야.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여 주는거야. 가장 깊은 곳에 남은 마지막을 그에게 던지는 거야....
난 그녀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녀가 버둥대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이 감격하는 소리가,율유동이, 움직임이 나에게 화약처럼 불을 놓았다.

"으~기다렸어..순미"
"선생님, 나 기뻐요.."

옷을 벗긴다. 하나둘 벗긴다. 그를 번쩍 안았다. 작품이 있는 그 아래에 그를 누인다 반듯이 그녀가 몸을 뒤튼다. 부끄러움인지...나도 옷을 던졌다. 이제 아무도 우릴 갈라 놓을 수 없는 시간이다. 촛불이 작품을 보는 건지 우리를 보는건지 일렁거린다.

"순미! 정말 정말 괜찮지..?"

그녀는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난 이윽고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더듬어 갔다. 탱크를 몰고 갔다. 오랜동안 길이 없는 땅을 무참히 밟고 싶었다. 탱크의 자욱을 내고 싶었다.

"찾아줄께..순미 이름을 찾아줄께..여자를 만들어 줄께.."

난 이런 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나를 찾고 있었다. 이제 곧 무슨일이 일어나야지 그렇지 않고는 심장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달구어진 신음 소리가 무서움 같기도 하고 기다림 속에 울부짖엇던 함성 같기도 하였다.

우린 이 순간 기다리고 있었겠지. 가장 저속하지만 서슴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인도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런 야만인의 모습이었다.

"꽈당,쿵!"

작품이, 다 그려지지 않은 작품이 누구 발길에 차였는지 아래로 뚝 떨어진다.

정말 고운 그녀의 깊은 샘에서 백사 한마리가 물을 먹고 있었다.
어릴적 우리 고향 버듭산 장군암 밑에 돌배나무 아래 맑고 맑은 샘이 있었다. 그 샘에 내장이 다 보이는 투명한 백사가 일년에 한번씩 물을 먹으러 내려 오는데.. 그 백사가 다녀간 뒤 첫 물을 먹는 아낙은 아들을 낳는다고 했었다.
그랬다. 지금은 그 백사가 샘물을 먹으러 그 샘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처음 백사가 먹은 물을 먹으며 아들을 낳는다는데.....
교수의 미망인이, 란같은 여자의 친구가, 별장 여자가, 순미가, 정말 아이를 낳을지도 몰랐다. 정말 작품을 누군가 그려주면 좋겠지....지금 이 모습대로....정말 명작이 될 것 같았다.

"여보!"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말이 나의 지축을 흔들었다. 정말 그녀와 내가 사랑하는 순간이었다.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순간에 나는 체험하고 싶었다.
힘을 다해 그녀를 이기려 발버등 쳤다. 꼭 안았다. 정말 그녀가 너무 예뻣다. 정말 예쁜 여자였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고운 여자였다.
웨딩마치를 울리며 신랑과 신부가 입장을 할 것 같은 밤이었다.
꿈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 같은 구름위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그녀가 거기 있었다. 환희의 빛이 창공을 맴돌다가 서해바다 외딴섬 천년 고목 대추나무에 벼락을 치나보았다. 누군가 죽었겠지....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