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을 때 우린 별장을 나와 길을 되 짚었다.
"오늘, 어땟어요?"
"네, 좋았습니다."
"우리 친구 어때요?"
"네?"
"참, 좋은 여자거든요."
"아, 네..."
"이사님을 제가 잘 얘기해 뒀거든요. 가끔 외로우시면 전화하세요. 그냥 같이만 있어도 청소가 되는 사람이예요.."
알 것 같았다. 언젠가 텔레비젼을 풍미하던 못생겼지만 음악을 잘하는 여자가 기억난다. 이름을 밝히기는 뭣하지만 이쁜데가 하나 없는 그녀의 순수함 속에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었다. 별장 여자도 그런 사람이라는대는 이의가 없다. 조금만 더 예뻣더라면...하기야 좀더 예뻣으면 그렇게 고고한 모습으로 보존(?)되기는 어려웠을테지.. 나다운 생각을 해 보았다..
"근데, 사모님?"
"네..?"
"저를 그 분께 소개시키시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그냥 두분이 외로울때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제 생각에서 오늘 가본거예요.."
그렇다면 그말이 그말이 아닌가. 잘 사귀어 봐라. 돈도 있고, 교양도 있고, 부족하다면 미모가 좀 그렇더라도 지금껏 혼자 사는 내게는 굴러온 호박이란 말 아닌가..
그러나 기분은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난 아직 총각(?)이고 그녀는 미망인데.. 괜한 심통이 내 속에서 열을 식히느라 꾸르럭 거린다. 빌어먹을 놈.. 아직도 자존심은 살아서 소리를 내려고 하나 남이 알아줘야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내가..
에이 모르겠다. 오늘은 란같은 여자에게 윤식이의 총이나 분명히 쏴 두자...
분풀이 같은 심정으로 창박을 물끄러미 쳐다 보는데 거리가 밝아지기 시작한다. 묵집 즐비한 구즉이다.
구즉은 옛날에는 버스가 두번정도 드나들던 산골이었다. 면사무소가 있기는 해도 시골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던 곳이다. 이 곳에 할머니 한분이 뒷바구니 산에서 도토리를 따다가 순수한 묵을 쑤어 면서기나 조합서기님들에게 실비를 받고 묵을 쳐 팔곤 했었단다. 그러다가 현대에서 동네 앞에 있는 공동묘지를 매입하여 아파트를 짓고 나면서부터 이 묵집은 욱일 승천 기업이 되었고 이제는 발디딜 틈 없는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된 것이다.
묵 먹고 돌아가는 사람들 차가 즐비하고, 우린 송강을 돌아 관평을 거쳐 탑립으로 접어 든다. 좁은 길들이 눈에 익는다. 이 길은 민아와 많이 다니던 길이다. 이 길로 다니며 묵도 먹고 닭도 먹던 길이다. 민아 생각이 간절하다. 이제 다 잊었겠지. 코 큰 나라에 가면 사람이 다 변하잖아..미국으로 간 민아는 이제 전설 속의 여자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뭐 생각하세요?'. 이사님"
"아, 네..그냥.."
"늘 외로워 보이셔요..말씀이 없으면 정말 더해요.."
"네, 죄송해요..사모님하고 있는 시간도 그렇게 보였다면 제가 잘못했네요 ^^"
"아니에요 그냥 해본말이예요..."
연구단지를 뚫어 지나면 사무실이 눈에 보인다. 회사에 이내 닿는다.
수위가 체인을 내린다. 그리고 거수 경례가 반듯하다.
여자가 기사의 뒤를 따라 걸어간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래 뒤에서 쏴볼까...
난 안주머니에서 작은 총을 빼냈다. 그리고 등뒤로 바짝 붙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지금이야. 지금이야.
총총거리고 그녀는 걸어가고 난 정말 망설였지만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광선이 그녀의 몸에 박혔겠지. 난 얼른 총을 집어 넣고 시치미를 떼며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참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하고 있는건지 혼돈스러워진 나를 그녀가 힐끗 돌아본다. 그리고는 눈치를 챈 것처럼 말했다.
"이사님, 참 이상하시네.."
"네..?"
"아녀요 그냥 해본소리예요"
나는 휴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녀가 나를 아래 위로 훑는다. 그녀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덜컥 겁이 난 나는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참 땀나는 시간이었다.
"수고 하셨어요. 고마웠구요. 시간이 오래 되었네요. 가서 푹 쉬세요. 그럼"
란같은 여자와 헤어지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 한 것을 처음이었다. 난 손수건을 꺼내 괜히 이마를 닦으면서 담배를 찾고 있었다. 참 남몰래 무엇을 한다는 건 고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