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갈까?"
"어디?"
"집에..청주.."
민아는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나는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어쩜, 오빠 보러 아주 못올지도 몰라.."
"왜? 무슨일 있어?"
"응, 그 사람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서 합치라고 난리야 시댁에서.."
"잘됐네.."
난 역시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가슴에서는 정말 서운 하건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밖에 더는 없지 않은가.
"오빠, 뭐 내가 해줄거 없어..?"
"해줄거.."
내가 필요한 건 무엇일까..무엇이 내게 가장 절실할까..
정말로 말한다면 내가 그녀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따스한 가슴과 허전함을 채워줄 시간속의 속삭임과 외로움을 떨쳐버릴 환희 같은 것이 아닌가. 그 걸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눈으로는 말하고 있어 사람들은 눈만 마추치면 발을 옮기고 발을 뒤따라 집으로 들어가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은밀한 공간에서 둘만의 비밀을 연출하지 않는가...
세상의 오묘함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이라지만 세상사 남녀의 운우지정처럼 오묘하고 다양하고 섬세한 것이 있을런지...
"오빠, 내가 해줄거 없으면 가고.. 밥이라도 해주고 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뇌 속에서 비밀한 방을 그리고 있었나 보다. 민아의 아름다운 나라를 여행하며 연주할 음악이 슬며시 떠오르고 있었다.
우린 눈 멎은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 왔다. 바지가랭이 끝이 녹은 눈물로 촉촉하다.
민아의 볼이 사과처럼 붉다. 머리도 눈발녹은 물로 윤기가 흐른다.
"오빠, 나 이제 오빠 못보면 어쩌지?"
그녀의 잔잔한 눈에 두려운 슬픔이 고여 있었다. 나도 그랬다. 정말 민아를 못보고 산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그녀가 시집가던 날 말고 요 근래에는 해 본적이 없지 않은가...
"오빠, 이제 우리 서로 잊어버리자. 응..더 이상 오빠를 감당할 수 없잖아.."
감당- 그랬다. 민아는 나를 늘 감당해 왔던 것이다. 자신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늘 나를 보살펴 왔고 어느 순간엔가 미련의 강을 넘어 둑을 부수고 나를 위해 기꺼이 제 몸을 희생하기까지 한 그녀가 아닌가...
"내가 혼자 있는 한 오빠를 그냥 두기는 어렵지. 누구든 내게 사슬을 채워줘야 벗어날 수 있겠지. 그게 오빠도 행복한게 아닐까.."
"아무말 마. 이리와 민아!"
그녀가 내게로 다가 왔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안듯 나를 그녀의 무릎에 넘어 뜨린다.
"오빠, 춥지, 슬프지 외롭지. 쓸쓸하지 ?"
그녀의 동산이 나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랬다. 늘 추웠다. 혼자 지내는 밤은 정말 춥다. 잠시잠깐 불을 지피는 시간이 있어도 그것으로 깊은 영혼의 추위를 해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빠, 우리 오늘 즐겁게 지내자 응.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렇다. 마지막이란 말도 슬프고 이별도 슬프지 않은가..
나는 그녀의 다음 율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가만히 있어.."
그녀는 나를 그대로 누여 놓고 방으로 가는 모양이다.
침구 내리는 소리, 커텐치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지 집의 조명이 낮아진다.
"오빠, 들어와 방으로"
나는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간다. 민아의 얼굴이 어둠속에서 하와처럼 보여지기 시작한다.
정말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아담 몰래 신방을 차렸다는 어느 해괴한 집단의 얘기가 생각 났다.
"오빠, 가만히 있어.."
뱀의 혀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나불 거렸다.
풀잎처럼 누운 나의 옷꺼풀을 민아가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유년기 봄이 열리는 언덕배기 양지바른 곳에서 우리는 뱀들의 엉켜진 모습을 가끔 보아 왔다. 그들은 오랜동안 그렇게 사랑을 나눈다고 했다. 48시간의 사랑을, 동물중에 가장 길게 사랑을 나눈다고 했다.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가장 음란하고 요사스러운 동물인 뱀이 가장 오래 음탕하게 살로 빗는 향기를 만끽하는 줄도 몰랐다.
"오빠,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마. 이제 어쩌면 우린 천국에서나 만날지도 모르잖아...이제 오늘의 시간이 지나면 우린 다 잊어버리는거야. 그리고 아주 어린시절 오빠와 나로 다시 돌아가자구요. 괴로워. 오빠의 모습이 정말 괴로워..정말 오빠를 좋아 했거든 흑흑"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의 나신 위로 그의 뜨건 눈물이 몇방울 뿌린다.
그의 껍질 벗는 소리가 들렸다. 혀를 낼름대며 뱀이 우리 속으로 들어와 부추기고 있었다. 저 선악을 아는 나무의 과실을 따먹는 날엔 정녕 네가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리라. 정말 즐겁고 기쁘고 영광스럽고 찬란할거야..
어느 어설프고 더러운 마을에는 앉은뱅이, 절름발이, 가난뱅이, 술주정뱅이, 홀아비 등 못나고 가난한 사람만 모여 살았더란다. 여자라곤 한명도 없고 여자가 올리 만무한 마을에 어느날 정말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들어와 살게 됐고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앉은뱅이와 잠을 자주고 절름발이의 욕정을 받아 주고, 가난뱅이의 분출할 수 없었던 욕망을 다 받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이 누군가 하여 나중에 알고보니 부처였다는 살보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민아는 내게 아마도 살보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게 보내준 부처란 말인가..?
우린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숨김이 없는 에덴을 회복하였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아끼어도 살을 썩지 않고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민아는 나에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나 보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들어가라는 시댁의 성화가 그에게 더욱 그런 마음을 부추긴 것일까..
부처는 떠나야 하기에, 그들과 함께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없기에 정말 줄 수 있는 그녀의 모든 것을 주려는 것인가 보았다.
서로 사랑 했지만 살을 썩지 못해 사랑을 빼앗긴 사례가 많이 있지 않은가. 들었지 않은가. 보았지 않은가. 지금이야 정조에 관한 관념이 좀 희미해 지긴 했지만 십년전만해도 그러지 않았다. 몸을 주면 그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를 구속하는 굴레가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조명탄이 오르고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불화산이 타오르고 대포의 위용이 드러난다. 민아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붉은 립스틱이 서서히 지워지고 중앙청의 깃발이 꽂히려나 보다. 그리고 만세를 부르려 돌진하고 있었다.
정말 서울은 곧 회복될 것이다. 환호의 깃발이 오르고 감격의 만세를 부르며 더 이상의 함성을 지를 수 없는 지경에 곧 이르게 될것 같았다.
"오빠, 그냥 같이 죽으면 안될까.."
두사람의 몸이 엉켜져 부를르 덜고 있었다. 아마도 천지 개벽을 하고 하늘이 박살 나겠지
"쿵!"
영결종천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들렸나. 아니면 심장을 꿰뚫는 총소리가 들렸나. 온 천지가 침묵하고 바람도 조용히 땅으로 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곧 뱀의 허물을 벗고 사람이 될것 같았다. 참 형언할 수 없는 시간에 벽시계 소리가 자구 크게 들렸다가 아스라히 사라져 가는데 민아는 나에게 정말 기쁨을 선사한 백사장 같은 몸을 드러낸채 어느새 잠이 들었나 색색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나신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며 살보시 살보시 그렇게 뇌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