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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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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같은 여자와 연구소로 가는 버스


BY 김隱秘 2002-11-29

"이사님, 미스박이에요. 사모님이 좀 뵙자는데요."
"왜?"
"모르겠어요. 사장님 실 옆에 접견실로 오시랬어요. 지금요"
"나 혼자..?"
"글쎄요 ㅎㅎ 가보시면 아실텐데 그런 것까지 제가 아나요"

미스박의 주문대로 사장실 옆으로 가니 접견실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노크를 하자 '네' 소리가 들려 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난같은 여자가 쇼파 중앙 의자에 앉아 있다.

"앉으세요, 이쪽으로"

약간 위축된 나를 편하게 해 주려는듯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의 행동이 안심을 준다.

"부르셨다기에 왔습니다."
"네, 그냥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요.."
"네..."
'아까 중회의실에서 뵈었더니 상당히 멋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ㅎㅎ"
"네..?"

당황하는척 했지만 내 속은 '그러면 그렇치 뭔가 있는 여자야' 라는 필이 왔다.

"실은 저 외로운 사람이예요. 도와 주세요. 처음 이사님이 우리 회사에 올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지적인 용모를 좋아하는 제 눈 때문에 솔직히 호감을 많이 가졌거든요.."

나는 머리를 숙였다. 딱히 할말도 없고 그렇다고 나도 그랬다고 할 수도 없고...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오늘부터 이사님은 각 연구소에서 올라오는 설문서를 점검해 주시고 간단히 설문서에 대한 특이사항을 체크해 주셨으면 해요...자세한 내용은 여기 적혀 있거든요. 한번 읽어 보시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취급해 주시고 잘 취급해 주세요."

그녀, 난같은 여자는 말미에 봉투를 곁들여 내 놓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

일어서려는 내가 너무 딱딱해 보였던지 그녀가 픽 웃었다.

"너무 당황하시는 것 같으네요. 저도 여자예요. 제가 우리 그이로 인해서 오너의 부인이 되긴 했지만..저도 아직은 여자이죠. 연구소에 계신 분들과 별 다를바 없는..ㅎㅎ"

나는 머리를 극적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녀가 내게로 한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내 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것이다. 나도 손을 내 밀었다. 악수한 손에다 입연지를 바르는 그녀가 머리를 숙였을 때, 정말 그를 와락 안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솔직히...

"언제 한번 밖에서 뵐께요.. 다음 달에 사장님이 유럽에 가시는데 그 때는 시간이 좀 날거에요..그럼 "

야릇한 잠시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괜히 무언가 밀회를 한 것같은 기분이 되어 난 사무실로 돌아 왔다. 담배를 한대 빼무는데 핸드폰이 동한다.
"여보세요?"
"나다. 윤식이. 수고 했다. 일간 한번 갈께..그리고 한가지 확인하느라고
<< 브레스톤 연구소의 DTMF 가이드 >>에 쓴 그대로 한거지?"
"그래, 잘 된 것 같아"
"알았어. 헌데 옥순이 꼴은 좀 어떻대?"
"응, 변함 없더라고.. 좀 나이가 들긴 했지만..."

아마도 저에 대해 하는 얘기가 없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겠지..

"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궁금한 눈치더라."
"응, 알았어. 곧 네가 한일에 대해서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 기대해줘"
"뭘?"
"나중에 내가 너를 데리러 갈께 그때 보면 알아"

참으로 의문이 많은 세상이다.
전화를 끊고 신문을 폈다. 우리회사 기사가 실려 있지 않은가..

〔 코스닥 등록 예정 기업 〕 내용의 대강인즉

제약업계의 다크호스로 신데렐라로 떠오르는 오르고(회사명) 는 풍요로운 가정 정다운 부부라는 회사의 슬로건을 내걸고 최근 부각한 XX리 등에서 생산하고 있는 성기능 개선제를 개발한 회사로 얼마 되지 않은 기간 동안에 급성장 하여 최근 기본 증자를 마치고 곧이어 코스닥에 상장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오너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란같은 여자의 남편 장애인 명박사의 불굴의 연구 의지를 다루었다. 세계적인 장애인 연구가 돈호킹 박사의 이름을 들먹이며 한국이 낳은 의학계의 혜성이라는 둥 좋은 말을 수두룩하게 진열(?)해 놓은 것으로 보아 돈꾀나 준것 같았다.

참 웃기는 일이구나. 내가 우연히 들어온 회사가 이렇게 급성장을 할 줄이야..
그리고 연구소 몇번 다녀오고 급기야 이사라는 이름으로 앉고 보니 이게 영 불안하고 언제 어떻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기야 아무것도 없이 들어 왔다가 나가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잡았던 고기를 놓치기 싫어하는 인성을 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담배가 다 탓나보다.
창 밖을 보니 연구소로 갈 버스인가 움직이기 시작 했다.
곧이어 전화가 왔다. 미스 박에게서. 버스를 타라는 전갈이었다. 오랜만에 연구소를 방문하려니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초조해졌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쁜 짓인지는 몰라도 여하간 떳떳지 못한 일을 하려면 초조해지는게 사람인가보다.
문을 막 나서는데 또 핸드폰이 떤다.

"여보세요...?"
"응, 나 민아.."
"왠일이냐?"
'응, 기쁜소식...ㅎㅎ"
"무슨..?"
"응, 그사람 귀국이 연기 되었대.."
"왜?"
"응, 회사 사정이라던데 잘 모르지 뭐 얘기 안하니까.."

그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희소식인가..나도 몰랏다. 그렇다고 비보도 아니 잖는가..

"그래, 알았어"
"오빠 내일도 출근하나?"
"내일..글쎄 내일은 지금으로 봐선 안할것 같아. 오늘 연구소에 가거든. 연구소 간 날 다음날은 쉬거든.."

민아가 연구소를 알까마는 여하간 내일은 노는 날일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퇴근하고 전화해줘..끊을께.."

나는 전화를 접고 버스쪽으로 다가 갔다. 안내 도우미가 손으로 가르킨다. 버스로 오르라고..
도우미가 내 속을 알고 있을 것 같아 난 다른 시선으로 버스로 올라 갔다.
다섯명이 누워 쉴 수 있도록 개조된 버스. 그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했다.
뭔가 가슴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꽃일까? 누가 거기에 와 있을까..?
담배가 피고 싶었지만 참을 수 밖에 없어 난 팔배게를 하고 풀석 누웠다. 다른 칸에도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