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사님, 저 미스 박이예요. 다름 아니고 오늘하고 내일 우리 사무실 이사하거든요..출근 하지 마시라고 연락드리랬어요"
기업설명회 이후 급격히 동조세력이 붙었나 보았다. 하기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특효약 개발이 예상 되는 벤처기업이니 정치세력은 물론 요즘 유행하는 조직까지 가세한 듯 싶었다.
그럼, 오늘은 뭘할까..민아생각이 제일 먼저 났지만 월요일에 옥순이와 온다고 했으니 그렇고...그러고 보면 마땅히 맘을 내놓거나 함께 시간을 보낼 상대는 없는 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쩌다 일순 나를 위로해 준 이모가 있었긴 하지만 그녀는 이제 돈푼께나 있는 영감(?)님 만나 내 이름을 잊었음은 물론 애정이라기 보다는 동정심에서 보살펴(?) 준 사람이 아닌가...
정년 퇴직하면 금새 폭삭(?) 늙는다는 선배들의 고백을 들을때마다 별로 느낀바가 없었는데 자신의 소속이 없다는 건 슬프고 허전하고 버팀목이 없는 바람속의 나무라고 할까 그런걸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간이 없을때는 잠이나 실컷 자보는게 소원이지만 시간이 넉넉하면 잠이 오지 않는 법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노는 날 새벽부터 법석을 떨고 끼리끼리 떠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추리닝을 걸치고 길로 나선다. 담배도 한갑사고 과일이라도 사들고 와
커피라도 마실양이다.
"안녕하세요?"
한참 동안 생각 박에 있던 골목길 과일 행상 여자 민아 친구라는 그 여자였다.
"아~ 네, 일찍 여셨네요..?"
"네, 오늘 같은 날은 날씨가 좋아서 밖에 나갈 분들이 많이 사거든요.."
"네..저도 좀 주세요 한 만원 어치만.."
"그렇게 많이요. 혼자 언제 다 드시게요 ㅎㅎ"
나는 공연히 머리를 긁적였지만 마당한 대답이 없었다.
"환자분은 좀 괜찮으세요?"
교통사고로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어 5년인가 넘었다던데 그게 궁금했다.
"네..장 그래요..죽기나 했으면 조으.."
그녀는 말을 잘못했다는 듯 얼른 말을 거둬 들였다.
"그렇군요. 어려우시겠네요..?"
"어렵긴요.. 다 끝난거죠 뭐.."
"네..?"
"이제 곧 끝날거래요."
나는 더 이상은 묻지 말기로 했다.
돈을 건네 주었다. 그 여자는 돈을 받고 과일을 내게 건네 준다
"아니, 왜 이렇게 많이.?"
그녀는 의아해 하는 내게 쓸쓸히 웃어 보였다. 그리고
"혼자 살기 힘드시죠?"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그 여자 미숙이라는 민아 친구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