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00 초록스커트를 입은 옥순이 00000
민아와의 추억을 못잊어 난 여름만 되면 이곳에 오곤 했었다. 그걸 알게된 민아는 혼자사는 내가 얼마나 자기를 못잊고 있는가에 대해 설음이 복받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길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오른쪽 화살표는 평온리를 가르치고 왼쪽은 동관리를 가리키고... 우리는 동관 쪽으로 걷는다.
왼쪽에는 새로운 음식점들이 들어 서 있지만 오른쪽에는 계곡을 따라 널려진 옛모습이 아직 살아 있다. 동구밖에 팽나무도 늙지 않았다.
"오빠, 생각나지 그때 같이 왔던 고향애들 생각나지?"
"그래, 다들 뭐하며 사는지...대청바다에 고향을 다 묻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그래, 어쩌면 그때 그 친구들 영영 못만날지도 모르겠네.."
"야, 민아야, 난 왜 이렇게 주책이 없는지 모르겠다."
"뭔 주책?"
"동생을 이렇게 타락시키고 죄속에 빠뜨리고도 시렁투도 않으니 정말 한심하지..?"
"..... 그야 오빠 잘못인가 내가 죽일년이지 뭐.."
"기억난다 옛날 여기 왔을 때 거 간호사하던 조 선생님이 우리에 한말.."
"뭔데..?"
"마음속에서 간음하여도 죄가 된다던.."
"그랬어. 그말 듣고 나도 그때 찔끔 했었어. 솔직히 난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늘 품고 살았거든.."
"그래, 넌 그랬어. "
"나만 그랬어?"
"아니, 나도 그랬지. 안되는줄 알면서.."
우린 신세한탄을 하며 조금이나마 위로 받고 싶었다.
"오빠, 오빠만 결혼하면 난 다 잊어버릴꺼야.."
"뭘?"
"오빠와 있었던 모든거 잊고 그 사람에게 잘할거야.."
"나땜에 안되는거니?"
"그렇다고 할 수 있지..혼자사는 오빠 생각만 하면 너무 힘들어 내 모든걸 다 주고라도 오빠를 구하고 싶단말야.."
그도 나도 침묵했다.
바람이 볼딱지에 찬기운을 붙인다.
"그만 돌아가자. 가다가 장안에 가서 밥이나 먹고 가지 뭐.."
장안은 서울 장안이 아니고 녹두장군 전봉준이 동학란을 일으키고 집결하여 서울을 삼고자 했던 동리의 이름이다. 행정구역상 명칭은 장내리이고 속칭 장안이라 불렀다. 민란이 성공 했더라면 서울이 될뻔했던 곳인데 그곳에 가면 좋은 토종닭집이 있어 더러 들린 적이 있다.
차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우린 손을 잡았다. 보드라운 살속에서 전해오는 따스한 체온이 억지로라도 행복을 네게 심어주고 있었다.
민아는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는 묘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오빠, 기분 전환해. 너무 기죽지 말고..."
차는 저수지 변로를 따라 미그러 졌다. 낚싯대를 드리운 태공의 모습이 더러 보이고 배한척이 그물을 걷는지 오락가락 하는데 곰방대 같은 산 기슭에 홀로선 낙락장송이 우리에게 배웅 인사를 하는듯 했다.
서원 계곡쪽으로 핸들을 돌리던 우리는 깜짝 놀랐다.
"어... 옥순이 언니잖아 저기 저기 .."
그랬다. 분명히 옥순이었다.
초록스커트를 입은 여자. 분명히 옥순이었다.
우리가 청주의 빵집에서 찾았던 옥순이가 여기에 와 있다니....
초록스커트가 눈에 확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