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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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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싶은 여인의 눈물


BY 김隱秘 2002-11-18

00000 호반에서 울다 00000

어제의 일을 잊으려는 듯 민아와 난 쓸대 없는 소리를 하면서 옥순이가 운영한다는 빵집을 찾아 갔다.

"오늘은 안계신데요.."

탈랜트 같은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오빠,아까 그 청년 차인표 닮지 않았어?"
"너 차인표 팬이지..?"
"응, 차인표가 오빠 닮았잖아 ㅎㅎ"

우린 헛걸음을 하였지만 옥순이를 만날 근거를 마련한 안도감을 싣고 차를 되돌렸다.

"오늘 출근 안해? "
"응, 오늘은 영 내키지 않아서 전화 했거든.."
"그래도 되나 신입사원이..?"
"그래도 된대 컨디션이 나쁘다니까 푹 쉬라고 했어.."
"그 회사 참 좋네.."

차창안에서 데워진 햇살이 정말 따스하다. 볼그래해지는 민아의 볼이 사과빛이다.

"오빠, 어디 갈까.."
"어디..?"
"갈때 있는데."

민아의 차는 미원방향으로 갔다.

"어디 가려고?"
"응, 거기..삼가리.."

그녀는 아직도 거길 못있고 있었던 것이다.

열대여섯 먹은 여름방학 때였나 보다
믿음이 있다기 보다는 아이들과 얼려 놀고 특히 또래의 여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아서 예배당에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여름 수련회라는 명목으로 우대를 받은 우린 함께 몇일간 오지선교팀에 어울려 재미(?)를 보곤 했었다.
촌중의 산촌인 삼가리는 하루에 버스 한번정도 들어가는 깡촌이었다. 말티재를 넘어 갈목리에서 오른산을 비비고 돌아서 저수지의 왼편 길을 따라 가면 조그만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있고 양철을 머리에 인 예배당 꼭대기에 낡은 십자가가 고통 당하는 예수님 같다던 교회...
우린 그 마을에서 고추도 따고 콩밭도 매어주고 혼자사는 할머니네 퀴퀴한 방에 도배를 해주면서 그 것이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만족해 했었다. 그 순수한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평생 내가 간직하지 못할 그런 고귀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더러는 해 본다.

"오빠, 생각나지 거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나고 말고 생생하게 생각 나지

모두들 잠든 밤. 피곤에 지친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코를 골고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살금살금 기어서 저수지 쪽으로 가고 있었다. 푸른 바다 같은 저수지에는 밤을 지새는 소금쟁이가 놀라 업었던 낭군을 밀치고 도망가는데 별달이 한낮의 뜨거움을 씻느라 멱을 감고..
개똥철학을 즐기던 난 뭐가 그리 심각한지 멍하니 호수를 바라다 보았다. 여기는 내가 왜 왔지? 아이들이 환호하고 소리치는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는 정말 있는걸까?

"오빠..!"

등뒤에서 부르는 소리는 언제나 내 그림자였던 민아였다

"왜 안자고 나왔어..?"
"그냥...잠이 안와서"
"이리와 앉아라 저수지가 정말 널네."
"하늘같아 저수지가 무척 크네. 오빠, 저기좀 봐 저기 물구렁이가 움직이나봐."
"뭐? 물구렁이.."

달빛을 타고 출렁이는 호수에 정말 물기둥 같은게 일어 난다

"이무기가 있다던데...무서워."
"얘 왜이래 저건 바람이 불어서 그런거야."

우린 꼬옥 부둥켜 안았다. 무서워하는 민아와 보호해 주려는 내 마음이었다.
우린 그 발로 예배당 십자가 아래로 갔다.
그리고 민아가 말했다.

"난, 오빠가 다른여자하고 사귀는거 못봐. 그러면 죽을거야"
"왜, 나하고는 안되는 것 너도 알잖아"

어른처럼 말했지만 그건 견디기 어려운 내 아픔이었다.

"오빠를 쳐다만 보고 살래.. 난 시집안가.."
"글쎄, 그게 될까..?"

우린 거기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 변치 않고 살자고 같이 살지 못하더라도 맘이 변하면 안된다는 지극히 애린 마음의 맹세를 했었다.

말티재 정상에 오르면 커피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우린 추억을 머리로 읽으며 거기까지 갔다. 그리고 천원짜리 커피를 사들고 신선한 산공기를 마신다.

"오빠, 이런데서 살면 좋겠네 그지?"
"그래, 좋긴 하겠지만..살 사람이 없네.."
"꿈이지 뭐,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는데..다 깨져버렸어.."
"뭔꿈?"
"오빠하고 쳐다보면서라도 결혼하지 않겠다던 열여섯시절의 소녀의 꿈 말이야.."
"흠..세월이 다르잖아..넌 내게 모든걸 다 해주었어. 네가 내게 준건 다 꿈을 이루게 해 준거야.."

민아는 사실 내게 주지 않은게 없는 여자다. 순종도 주고 복종도 주고 돈도 필요하면 주고 정도 주고 그리고 추억도 주고....모두다 내게 아까워 하지 않았지만 난 준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과 도피와 적당한 즐거움만을 추구한 자신이 밉고 슬프다.

말티재를 넘어 갈목리를 지나 우회전하면 서원 계곡과 갈라지는 만수계곡 쪽으로 들어가는 찻길이 한유롭다. 늘 거기엔 저수지 물이 철럼 거리고 넓어진 찻길 옆으로 안내 표지판에 맞아 준다.

우린 추억의 장소에서 차를 세웠다.
삼거리 매운탕, 빙어라고 쓴 음식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먹자 오빠..맛있겠네.."
"그래, 저쪽좀봐 교회가 그 자리에 있네..작년에 왔을 때는 페인트가 형편 없더니.".
"오빠! 오빠 작년에도 여기 왔었어?"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민아가 갑자기 내 품으로 달려 들었다. 눈물을 흘리나 보았다.
먼데서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의아해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