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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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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립스틱


BY 김隱秘 2002-11-14

"조카, 나 어떡해?"
"무슨 일 있으세요?"
"마음이 좀 찹찹하네."
"제가 도와 드릴까요..?"
"조카가 도와줄 일이 아니야"

이모와 난 잔을 비웠다. 소주의 쓴 향이 사람을 녹인다. 사람들은 그래서 가슴을 녹여내기 위하여 술잔을 부딪나보다.

"이모, 필요하신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아냐, 나 혼자살기가 넘 힘들어서 늘 외로웠는데.."
"그러시죠 외로우시죠.."

이모는 또 한잔을 비운다. 그리고 내게 잔을 내민다.

"조카, 나 따라다니는 영감이 하나 있는데..그 사람하고 같이 살아야 하려나봐.."
"네!?"

나는 매우 놀랐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괜한 배신감 같은게 아니면 이모에 대한 아쉬움 같은게 있는 걸까

"예...그러셨군요. 좋은 분이신가봐요.?"
"응, 좋지는 않지만 돈도 좀 있고 심성도 괜찮고..조르기도 하고 해서.."

한잔이 또 빈다. 나도 연거푸 술잔을 비운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유는 모르지만 가슴이 답답해 진다.

"이모 마음대로죠 저야 이모가 좋은 분 만나면 좋죠.."

난 맘에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모가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된다는 건 참으로 좋은 감정일 수가 없다. 이모와 조카의 사이에 왜 이런 감정이 존재할까? 나도 몰랐다.

"하여간 조카한테는 미안하지만 요즘 많이 생각했어. 조카와의 보낸 시간들 속에서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딘가 생각하게 되더라고.."
"제 신경 쓰지 마세요. 이모 인생인데요.."

나는 또 빈말을 하고 있었다.

"자, 한잔 받아."
"네..."

술이 오른다 마음도 붉어진다. 불빛도 으스러진다 미등 색이 된다.

"조카,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되지..?"
"그러세요. 늦었잖아요. 이제 시집 가면 못볼지도 모르잖아요"
"시집..ㅎㅎ 시집을 간다고 정말 내가 시집을 가야하나..ㅎㅎㅎ"

이모는 실없이 어이없이 웃고 있었다. 몹시 허전해 보였다.

"조카, 얼른 씻어라. 나도 세수좀 할께"

이모의 말따라 나는 씻으러 세면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