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렇다. 나는 길을 떠났다. 내 삶의 어느 구석도 온전한 나는 없었다.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가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나를 그냥 싸구려 모조품으로만 보았으므로
그러나 그 끝은...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그를 떠났듯이 나는 새로운 그를 만나야 했으니...
그 해 겨울
"경아. 경아 , 문 좀 열어"
"경아.....
그랬다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늘 그자리에 있는 사람이고 그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문지기로 만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나의 아이들 조차 나를 그렇게 인식하지나 않을 까 겁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인식은 거의 찰나에 그칠뿐이었다.
그 무엇도 나를 깨어 있지 못하게 했다.
어떠한 충격도 나의 생활속에서 나를 바꾸어 놓치는 못했다. 설사 그가 다른 여자와 여관에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도 나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 나는 그렇게 교육 받았고 그러게 자라났다. 그리고 이 생활의 편리를 누리며 나도 그 속에 빠져 들고 있었으니까...
"또 술이예요.'
"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 그럴 수도 있지.뭘그래. 다그런거라고"
남편은 거기까지 말하고 쓰러졌다. 경아는 취한 남편을 겨우 일으켜세워 방으로 데려갔다. 양말을 옷을 벗기며 경아는 자신을 생각했다. 나는 누구일까?
그래 나는 김경아 서른다섯 누가 봐도 아줌마다.
나는 누굴까?
요즘 몇일 동안 그런 생각이 점점 더 나의 뇌리를 스쳤다.
경아는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이 지낸 시간이었는데 그저 아이들 키우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만 여겼는데... 이제 많이 자란 아이들 때문이었을까?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과 유치원생인 둘째딸.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흐믓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또 허전함이 밀려왔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