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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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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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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수빈맘 2002-08-12

빗줄기가 힘차게 내리꽂는다.
태풍 라마순이 올라오고 있다는 일기예보처럼 바람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불어대고 있다. 며칠째 이런 장마비가
계속되고 있다.
털털털털 툭 털털털 툭
언제부턴가 이렇게 불쾌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는 기계 도대체 오늘은 또..
바닥에 배를 깔고 책을 보던 몸을 일으켜 소리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휴우.. 엄마!! 오늘은 또 운동화야? 정말 내가 엄마 땜에
미친다 미쳐. 아주 엽기적이야. 엽기!"
오늘은 엄마가 운동화를 세탁기에 넣고 빨고 있었다.
엄마는 늘 그렇다.
방을 닦던 걸레로 싱크대의 물기를 닦는가 하면 그 걸레를
다시 속옷들과 함께 세탁기에 넣어서 빨아버린다.
그리고 아무렇게 않게 툭 툭 털어서 말린다.

엄마.. 엄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안식처 엄마.
나에게 엄마는 안식처가 아닌 피하고 싶은 어두운 동굴이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첫 생리를 했을 때 맨 처음 엄마에게
알리지 않았고, 손잡고 시장에 같이 가는 대신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는 아이였고 비가 오는 날 학교에 우산을 가져다 주는 엄마가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난 커서 엄마 되면 직장같은 건 안 다닌다' 중얼거리면서 비를 쫄딱 맞고 집으로 와야만 했다.

" 아이. 얼른 밥먹고 도시락 싸서 학교가라이. 아이고, 밥
다 흘린다. 좀 촐싹대지 말고 차분히 좀 해라이.."
다섯명의 아이들 중에 맏이인 나는 학교 도시락을 늘 내손으로 싸야만 했다. 내 손으로 밥 퍼서 담고, 상위에 올려져 있는 반찬 몇가지 젓가락으로 집어 반찬통에 넣어 톡,톡하고 반찬통을 잠그면 준비완료.
그래서일까 난 학교에서 맞는 점심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야..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엄마가 무슨 반찬 싸 줬을까?"
이렇게 점심시간만 되면 엄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열어보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평평하게 고르지 못한 밥 싸는 솜씨며.. 김치국물, 섞여버린
다른 반찬들.. 나는 도시락을 열자마자 얼른 한 숟가락 떠
먹고는 뚜껑을 살짝 닫았다 반찬 한번 집으려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를 십여번 반복하고 나면 도시락이 비워져갔다.

엄마는 직장을 다녔었다.
없는 시골 살림에 아이는 다섯.
그리고 남들에게 퍼주기 좋아하는 아버지..
여자문제가 복잡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살면서 엄마는 억센여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막내가 세 살 무렵 엄마는 화장품 외판원을 시작했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네명의 동생들.
엄마가 돌아오시기전에 동생들과 저녁을 해먹어야 했다.
어쩌다 엄마가 실적이 좋은 날엔 동네 짜장면집을 가기도
했지만 우린 여전히 엄마가 그리웠고, 골목길에서 들리는
여자 구두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어떤 날엔 대책없이 우는 막내동생을 업고 동네 한바퀴를
돈다. 시계, 반지,목걸이, 팔찌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예물당" 앞은 언제나 정규코스의 하이라이트였다.
계속 울어 제끼던 막내동생도 그 가게 앞에만 서면
눈이 휘둥그레 빛나며 구경하기에 바쁘다.
그런 막내동생을 보면서 내 마음은 늘 외로웠다.
나의 이 외로움의 끝은 어디일까?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하고 다정하게 불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난 늘 엄마 앞에 서면 주눅이 들었다.
엄마에게 흠잡힐 일은 안해야지.. 난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니까 집안일이라도 도와드려야지..
엄마는 이런 나에게는 늘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내고 난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됐다.
그리고 서울로의 대학진학. 직장생활.
그 후로부턴 엄마와 같이 살지는 않았고,
여전히 엄마의 존재는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명절을 제외하고는 서로 얼굴보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난 그게 좋았다.
왜 난 다른친구들처럼 엄마랑 가깝지 않은지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아서 좋았고 엄마에게 억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유가 좋았다.

엄마가 쓰러지신 건 6개월 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
"응.. 왠일이니.. 니가"
"누나. 엄마가 쓰러지셨어?"
"뭐? 언제?"
"오늘 새벽녘에, 아침 차려드리다가 쓰러지셨데. 마침 이모부 가 집에 들르게 돼서 발견하신거야. 누나.. 누나.."
"그래, 말해 듣고 있어."
난 너무나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나.. 잠깐 휴가 내서 와. 엄마가 누나가 제일 보고싶데"
나는 잠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나를?"
나는 순간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여기 회사 비우기가 어떨지 모르겠다.
대충 정리하고 나서 내가 전화할게"
엄마가 나를 제일 보고싶어 한다..
엄마가 나를.. 왜 그럴까.
생전 따뜻하게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한 나를..
그리고 늘 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때는
전생의 원수가 태어났나보다 라고 말씀하시던
엄마가.. 나를 보고싶어 하신다.
어떻게 해야하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가을날
나는 호남선 열차안에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엄마와 어린 딸..
그 둘은 서로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비록 엄마와 딸이라는관계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서로에게 말벗이 되고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인연으로
만난 것 같았다.
엄마와 나. 우린 과연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것일까?
엄마와 난 지금까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나?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난 우울해졌다.

엄마가 입원해있는 병실문을 열자마자 하얀 김을 내뿜고 있는 가습기가 눈에 띄였다. 그리고 그 밑에 조용히 숨을 고르며 잠을 자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내가 느껴왔던 강한 엄마가 아닌
힘든 인생여정을 걸어온 한 여자가 그곳에 누워있었다.
난 순간 눈물이 솟아져 나왔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내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흘
러내렸다.

15평 남짓한 서울의 내 아파트.
엄마가 퇴원을 하던 날 난 엄마를 모시고 왔다.
예상했던 대로 엄마와 같이 산다는게 쉬운일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난 좋았다.
이 세상에 내가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엄마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비록 운동화를 세탁기에 돌리기도 하고
걸레를 속옷과 함께 빨아버리기도 하는 엄마지만
엄마가 곁에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