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하고도 몇 년을, 앞만보고 살아왔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새털처럼 많은데, 난 이미 내 인생의 반을 살아버
린 기분이다. 엄마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했을 그 인생살이가 내게
는 지겹고 귀찮은 일이 되버린 이유다.
내 생애에서 엄마라는 존재의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그 기억들이 내 머리속 기억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엄마…
갑작스레 엄마가 내 곁을 떠나고 나서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던 이름인지…
그 땐 철이 없었는지, 돌아가신 엄마에게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이 먹고 싶다는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엄마걱정 보다는 결국은 나 자신의 걱정을 하고 있었으리라...
아주 어렸을적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빠가 해외로 일을 하러 가셨고 엄마와 오빠, 동생과 살고 있었다. 가끔 아빠의 귀국마중으로 김포공항에 갔던 것도 같다.
엄마는 술을 좋아했다. 엄마가 술을 마시는 날이 늘어갈수록 아빠가 보내주는 돈은 어디론가 남김없이 새나가는 듯 싶었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나 보다.
그런데 술을 왜 입에 댔을까… 엄마의 주량은 점점 늘어갔고 횟수도 거의 매일이 되다 시피 했다.
그 때 엄마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와의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었는듯 싶다. 지금에 와서 굳이 알고 싶진 않지만…
아빠가 귀국을 하고서도 엄마는 계속 술을 마셨다. 아빠는 기껏 돌아온 집에는 술에 절어 사는 마누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칼로 후비는 듯한 배신감이 들었을게다.
아빠는 엄마의 손에서 술을 떼어놓을 작정으로 우릴 강제이주(?)시켰다.
태어나서 십년을 넘게 살아온 고향을 그렇게 무작정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낯선곳에 우릴 이사시킨 아빠는 우는 엄마를 때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엄마는 손에 쥔 돈도 없는 듯, 그 날 이후로 우리는 하루아침에 영세민 신세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