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헤어진뒤 얼마지나지 않았을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이상한것은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가끔 견딜수 없게 그녀가 보고싶어질때가 있었다는거다. 내가 헤어지자고했을때 그녀는 많은 말도 하지 않았고 화를 낸다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가하는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거창하게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갖다댄 내가 오히려 우스워보이는 그런 이별장면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이상한 조바심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면 그녀는 전화를 받았고 그저 내가 묻는말에 대답을 하는정도였다. 전화를 끊고나면 허탈했고 그녀의 낮은 웃음소리가 듣고싶었지만 곧 잊어버리곤 했다.
한달쯤 지났을때 그녀가 불쑥 내게로 찾아왔었다. 전화목소리로는 가늠해 볼수 없었던 마음의 상처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있는 모습으로. 그녀는 잘지냈느냐고 물었고 들고 있던 쇼핑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그안에는 짧은 만남동안 내가 선물했던 이런저런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갑자기 화기 치밀어 그녀에게 쏘아붙였다.
"이걸 나보구 어쩌라는거야?"
"맘대루 해요. 버리든지..."
"버릴꺼면 본인이 버리면 되잖아?"
"준사람이 버려요."
그녀 특유의 고집이랄까 그녀의 말투에서는 날 거역할수 없게 만드는 그런 힘이있었다. 그녀가 돌아간뒤 구석에 던져두었던 쇼핑백을 끌어다가 열어보았다. 별로 좋은걸 선물한 기억도 없었지만 그 내용물은 내가봐도 한심했다. 내가 가지고 있다가 준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싸구려 초콜렛이나 사탕 부스러기 (그녀는 포장박스들을 다 간직하고 있었던것이다.), 몇장의 편지랑 카드...그런걸 붙들고 추억에 젖을만큼 감상적이지 못했던 나는 봉투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마지막 만난것은 우리가 헤어지고 난 다음해 겨울이었다. 아내와 한참 열애중이었고 아내의 친구들과 내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친해져 같이 어울려다닐때로 그날도 친구들과 만나기위해 약속장소인 일식집에 도착했을때 저쪽 테이블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우린 서로를 보았지만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못본체 했다. 아내와 친구들일행이 도착하고 즐겁게 웃고 떠들다가 화장실을 가는길에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는길이었고 우리는 둘중 한사람이 길을비켜주어야하는 좁은 통로에서 그렇게 마주쳤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그런 상황에서 둘이 한꺼번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어색한 웃음이라도 나왔으면 말이라도 걸어보았을텐데 그럴 기회도 없이 우리는 서로의 오른쪽으로 비켜갔다. 그렇게 우리의 재회는 짧고, 그래서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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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커피를 무척 좋아했던 그녀. 나중에 결혼하면 커피향으로 남편을 깨우고 싶다고 했었던 그녀. 지금 그녀의 남편은 커피향을 맡으면서 잠에서 깨어날까 궁금해 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