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욱의 숨소리는 가늘고, 옅게 들려 왔다.
명준이 가슴에 안기어 잠든 여자를 힐끗 힐끗 바라보는 선혜의 마음은 찹찹했다.
밤 11시쯤이 되었을때, 명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딸아이를 목욕시키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정중했다.
"선혜니?"
"어. 명준씨 무슨일 있어?"
"어 부탁할께 있는데..."
그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었지만, 오늘 같은 일은 반갑지 않았다. 약간은 불쾌하기도 했지만 명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기때문에 선혜는 기꺼이 그 부탁을 받아 들였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자 시간은 새벽 3시.
명준도 뒷 좌석에서 피곤한지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명준의 가슴에 안긴 영욱을 보는 선혜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가슴팍에 안기어 살고 싶었는데...
세상 물정 몰라도, 세상 힘든줄 몰라도, 저 사람의 넓고 따스한 가슴이 지켜 주길 바랬는데...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이 였는가?
"명준씨! 명준씨!"
깜짝 놀라 일어나는 명준은 당황한듯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벌써 서울이니?"
"어."
"피곤하지? 내가 운전 할까?"
"아니... 관둬 내일 명준씨 출근해야 되잖아
나는 내일 쉬면 되는데 뭘... 근데 그 아가씨 집이 이쯤인가?"
성북동이었다.
이리저리 큰 대문에 대궐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동네였고, 새벽이라 마땅이 물어 볼곳도 없었다.
어쩔수 없이 곤히 자는 저 여자 영욱을 깨워야 했다
선혜는 큰길에 문이 열린 24시 약국에서 겔포스를 사서 명준에게 건냈다.
명준은 조심스럽게 영욱을 깨웠고, 영욱은 겔포스를 먹고 나서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든 듯 핸드백을 정리 하는듯 분주해 보였다
"최 pd. 나 갈께. 미안해. 이런 모습 보여서... "
"괜찮겠니?"
"물론이야."
"내가 전화 해도 될까?"
"아니 내가 할께."
차 문을 열며 영욱은 선혜에게도 감사했습니다. 라고 깎듯하게 인사를 건냈다.
성북동을 빠져나오면서 피곤한듯 차 시트에 기대어 있는 명준에게 선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아가씨 친구야?"
"아니 그냥 아는 사람"
"그냥 아는 사람?"
"어... 선혜야 청담동으로 가야 되는데"
"청담동?"
"나 오피스텔에 있거든"
"그래 청담동 도착하면 깨울께... 명준씨"
마음이 쓰렸다.
참한 남자를 아름다운 여자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보내야 하는거지만, 가슴 깊이 존재하는 백두산의 천지 보다 더 깊이 숨겨진 명준이 있는 곳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파 선혜를 괴롭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