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생수등 무거운 물건을 반품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58

선혜가 돌아왔다


BY 허브향 2002-03-23


"최감독! 누가 찾아 왔어"

아침부터 회사에 누가 찾아 올 사람은 없는데...
방송국을 나와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뒤돌아서 방송국을 들어가려던 명준은 발걸음을 멈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친근한 목소리!

"명준씨!" 선혜였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 미안해서 선혜의 얼굴을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나 왔어요. 당신이 버렸던 옛 애인"


방송국 벤치였다.
예전보다 마른 체격과 얼굴.
화장을 두껍게 한 선혜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몸소 깨닳았다.

"나 명준씨 한테 면목 없네"
"선혜야"
"선혜! 윤선혜... 내 이름 불러 줘서 정말 고맙다"
"미안해"
"명준씨, 후회 하는 구나
나처럼 좋은 여자 버려서. 놓쳐서. 그지?"
"응. 그래 나 후회 한다
뼈저리게 후회해. 그때 그 상황의 나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후회한다
늦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내게 한번만 더 기회 줄수 있겠니?"
"아니 늦었어
명준씨, 예전이나 지금이나 놓치고 나서 후회 하는 버릇 아직도 못고쳤구나. "

선혜야. 하늘처럼 높던 네가 부모님의 희망이라며 욕심 부리며 살던 네가 이렇게 나때문에 힘들어 하며 살아도 되는 거니?
나 정말 천벌 받진 않을까?
너를 버리는건 잘못 된거였어. 너의 자존심을 구겨 버린건 죽을 죄를 진것과 진배없어.왜 이제야 그걸 알게 된걸가.
널 놓고 나서 우리 둘은 모두 망가져 버렸어. 아니 너의 딸과, 선국이까지도... 내 선택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미안하다는 말로 용서를 빌어도, 용서 되지 않을 이 상처를 정말 어떻해야 하겠니?

명준씨. 너무 걱정하지마
내 선택에 대해서 후회 해.
뼈저리게... 너무 아프게... 힘들어 하는 내 딸을 볼때마다 딸아이의 아빠가 아닌 당신을 원망했어.
왜냐구? 내가 사랑한건 그 사람이 아닌 당신이었거든.
기회를 줄수 없어. 당신은 너무나 멋지고, 너무나 따스한 사람이니깐.
나보다 백배 천배 좋은 사람 만나게 될테니깐.
이제 지나간 세월에 대해 후회 하지 않기로 했어.
내 인생은 기차처럼 지나가 버렸지만 밝고 맑은 내 딸아이의 인생이 살아 있잖아. 그 인생이 조금 더 순조롭도록 내가 힘쓸꺼야
당신은 그대로네. 예전 그대로야.
웃는 모습. 긴장한 모습. 긴 손가락. 서늘한 눈매. 오똑한 콧날.
변한게 없다. 세월만... 내 인생의 세월만 지나간것 같다.
여자로서 자존심도 버려야 했던 그 세월을 나는 이제 당신을 보며 지워 버린다. 당신이 내게 지우개가 되주기를 바래보면서...

"딸 많이 컸니?"
"우리딸? 선국이 한테 들었구나"
"우연히"
"궁금하구나. 선국이나 너나 내 소식에 대해 궁금했었겠지.
이제 말해야 할것 같아".
"말하고 싶지 않으면 관둬"
"아니 말하고 싶어! 말해야 겠어
97년 서울을 떠나서 일본에서 우리 딸아이 아빠를 만났어.
그때 그 사람은 제일 교포로서 사업을 하고 있는 유부남이었는데 내가 그 가정을 파괴 해 버렸어. 후후... 그때 왜 그리 철이 없었는지... 그 사람이 이혼을 하고, 나와 정식적으로 재혼을 했어.
그리고 우리 딸을 가졌는데... 점점 변하는 거야. 태도가...
알콜 중독에 마약까지. 변변한 사람이 아니더라구.
그때 난 이미 아이를 가졌지만, 그걸 숨긴채 술집을 나가게 되었어
한국에서 아무리 잘난척 하며 살았었지만 일본은 그것이 순순히 나를 받아 주지 않더군. 난 남편의 폭력에 이기지 못해 정신병원에 신고를 하고, 도쿄에서 오사카로 자리를 옮겼어.
지금까지 오사카에서 술장사를 하고 있고. 지금은 꽤 크게 하고 있어서 돈 걱정 없이 살고 있어"

선혜는 상처를 숨김없이 드러내놓고 있었다
피멍이 들고, 피가 나고, 동물에게 갈귀갈귀 뜯긴 상처.
그것을 사랑했던 사람에게 모두 보이고 있었다.
명준이 지우개가 되어 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