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이 테이블 밑으로 모여서 움직일 때마다 쨍그랑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과 대화가 오가는 동안 얼마나 자신의 목줄기를 타고 술잔이 비워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지 않은 양을 마셨다고 승원은 생각을 했다.
눈을 들어 가게 안을 돌아보니 처음 왔을때에 있던 사람들 보다 새로이 들어온 사람들이 제각기 준비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 승원의 눈길을 끈 것은 자신의 뒤 쪽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모두들 세네명이 앉아있고 웃음과 대화가 시끄럽게 오갔지만 유독 뒤쪽에 앉은 두 사람은 조용히 그리고 심각한 표정과 가라앉은 대화만 오고갔기에 군학일계처럼 보여서 그런 것이다.
"미안해."
이 한마디를 던지고 여자는 작은 소주잔의 내용물을 비웠고, 남자는 '왜 그래야만 하냐'는 애절한 목소리가 뒤따르는 것 같았다.
"그냥 미안해. 헤어지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 너 생각처럼 다른 사람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는 아닌 것 같아서. 힘들게 이 사이를 유지할 필요는 없잖아."
여자는 말 한마디 또는 말하는 중간중간에 술잔만 비웠다. 당연히 안주는 지글지글 익어가다 못해 타들어갔다.
종업원이 심각한 이 둘의 사이를 뚫고 가스불을 줄이다 못해 꺼버리고 자리를 피하자 이 둘의 심각한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자는 혀가 꼬인 목소리로 첫 마디와 같은 "미안해"라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야. 이승원."
"네. 형?"
"너 지금 뭐하냐. 몇 번을 불렀는 데."
"응. 잠시 뭐좀 생각하느라고."
그러나 승원의 관심은 다시 등뒤로 향했다. 승원의 일행은 다시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등뒤의 여자가 울먹이며 이번에는 "너무 미안하다"고 했고, 남자는 계산을 치루고 여자를 부추기며 나갈 준비를 했다.
테이블 위의 안주는 나올 때의 무게에서 수분만 날라갔고, 두 병의 소주만이 자신의 속을 모두 비운채 있었다. '여자가 무슨 술을 저렇게 많이 먹냐'고 승원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밖을 향하는 그 둘을 버려두고 일행의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여."
등 뒤에 있던 남자의 목소리와 낯선 여자 아니 귀에 조금은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이. 계집에야. 뭐이렇게 늦었어."
"미안해. 숙원언니. 참 오빠들도."
"왜 그렇게 늦은 건데. 여기 승원이를 너가 불렀다면서."
김영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신희인은 고개를 돌려 이승원을 보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다는 표정을 승원은 지었고, 다시 그들만의 방학과 생각의 마디들은 연결고리를 찾으며 대화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승원은 대화의 내용 보다는 아까 뒷 자리의 연인처럼 신희인에게 관심의 대상을 바꾸었다.
'생각처럼은 아닌 걸'
승원은 속으로 웁조리며 관찰의 대상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어깨에 닿은 듯 긴머리. 하얀 피부? 아니 조금은 까만 피부. 어 그런데 긴 머리 끝을 동그랗게 말아올렸네. 자기가 무슨 캔디라고 저런 머리를 한거야! 그래도 옷은 깔금하게 입었네.'
대화의 상대가 한 명 더 늘었음에도 이야기 대상은 변함이 없고, 테이블 위의 남은 술잔을 비우며 신희인이 입을 열었다.
"내가 늦게 온 것은 미안하지만, 그렇지만 이곳의 술과 안주는 모두 그대들이 점령하였으니. 나의 영토를 찾기위하여 술자리를 바꾸고자 합니다. 불만이 있으신 분은 언능 계산대에 가서 술 값을 치르시기를 바라며, 불만이 없으신 분은 제가 용서를 구하는 것을 술값을 치르는 것으로 하겠사오니 양해바랍니다."
"하하하하. 그래 너가 계산해라. 공짜 술 잘먹었다."
영철이 모두에게 신희인의 말에 동조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풀어놓았던 자신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며 자리를 일어났고, 일행 모두는 영철의 뒤를 따라서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