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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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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러 가다


BY 푸른배경 2002-04-01

째각째각. 시간은 흐른다. 물처럼 앞을 가로막는 저수지도 없고, 빙빙 돌아가야하는 도랑도 없다. 다만 흐른다. 흘러간다. 시간은 고이지도 않지만 흔적도 없이 소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에게는 추억? 흔적? 기억? 몇가지 단어들이 떠오른다.
'신희인'. '신희인'
당구에 빠지면 천장도 연습장도 당구대처럼 보인다고 했던가! 중독되기에는 너무 이른것일 텐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 희미하게 떠오르는 추억도 없는 사람의 이름이 승원의 머리속에서 심해의 상어처럼 유영하고 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쳐가는 것 같아. 피곤한 몸과 술기운이 오른 몸을 가지고도 이렇게 선명하게 그의 이름이 맴도는 걸까. 내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기에 그럴까? 꼭 어릴적에 소풍가기 전날 같은 기분이다. 내일 분명하게 기분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은....'
이승원은 눈을 감기도 했고, 미지근한 물로 가슴을 편안하게 해보려고도 했지만 신희인이라는 세글자로 인해 쉽게 잠이들지 못했다.
"승원씨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거 조금 놀렸다고 그렇게 잠까지 설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어제 진짜 MT 갔다가 온 것 아니야?"
"네. 과장님 제가 무슨 대학생입니까? MT를 가게."
"자네 대학생이잖아. 지금 방학중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린 것 아냐?"
승원은 잠시 깜박한 모양이다.
"아, 그렇구나. 내 제가 대학생인 것 같지만 뜬구름없이 MT는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를 않는 데."
"허허 그것도 모르나. 우리때는 다 통하던데."
"뭐가 통한다는 거예요. 한밤중에 MT를 간다는 말도 맞지 않는 것 같구요."
"미아리 트레이닝. 이 것도 모르나. M은 미아리를 말하고 T는 트레이닝을 말하다고. 즉, 미아리에 갔다가 왔냐는 말이지."
사무실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승원의 얼굴이 붉어지면 붉어질수록.
오후 1시 45분. 퇴근을 얼마안두고 전화벨이 울렸다.
"네. 이승원입니다."
"저여요. 신희인. 바쁘세요?"
"아뇨. 이제 퇴근 준비중인걸요."
"그러시나요. 저는 아직 2시간 정도 더 일이 남았는 데. 참, 약속시간은 6시 30분이구요. 장소는 신촌로터리 희망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시간이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그래요. 좀 시간이 늦는군요."
"왜요? 못오시나요?"
"아뇨. 집에 가서 한숨 자고 가려고요."
"그럼 잘된 것이네요. 어제 피곤하시다고 말한 것 같은데. 그럼 있다가 볼께요."
"네~~"
"딸가닥"
이승원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신희인의 전화기는 내려진 것 같다. 승원의 마음에는 그 전화 끊는 소리가 마음에 걸린다.
'어라. 끝말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다니. 혹시 나 혼자만 이러는 걸까? 아니 이런 의문을 갖는 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지.'
승원은 책상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고, 얼마 잠을 청하지 못하고 샤워를 한 후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도 초면인데, 멋있게 보여야 할 것 아니야. 혹시 알아 내 가슴속에 자리한 이상형이 짜자잔 하고 나올지. 모르는 일이잖아. 신희인이라는 여자가 내 반쪽일지도.'
승원은 콧노래를 부르며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파란색 셔츠를 걸치는 가 싶더니 아이보리 셔츠를 다시 야자수가 그려진 티를 걸쳤다가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아이보리 셔츠의 단추를 여미고는 청바지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