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에서 놀았다. 혼자.
내 몸통만한 둘레의 나무들로 빽빽한 사방. 온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들로 햇빛은 감히 들지 못했다.
그곳에 작은 공터가 있었다.
바닥에는 푹신한 이끼. 그 이끼들 사이에 자그마한 고사리.
내 손에는 어디선가 주워 온 나뭇가지가 들리고 난 달린다.
내 손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휘둘린다.
나무들이 내 곁으로 달려 왔다 사라져 간다.
누군가 나를 따라 온다.
문득 뒤돌아 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곳엔 여전히 나무들과 이끼와 고사리.
다시 달려 나간다. 심장이 쿵쾅댄다.
누군가 나를 여전히 따라 온다.
뒤로 돌아선다.
그곳엔 나무들과 이끼와 고사리, 그리고 그들의 숨.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이 숨쉬고 있었다.
육중하고 거대하게.
나도 숨을 쉬었다.
그러나 내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빠가 또 술을 드시고 오셨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신다.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신다.
아빠가 또 소리를 지르신다.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신다.
난 방으로 들어가 눕는다.
머리속에 그림을 그린다.
누워있는 나.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이 있는 집.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이 있는 집이 있는 서울.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이 있는 집이 있는 서울이 속한 한국.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이 있는 집이 있는 서울이 속한 한국을 포함한 지구.
내가 누워있는 작은 방이 있는 집이 있는 서울이 속한 한국을 포함한 지구가 있는 우주.
편안하다.
맑고 깨끗한 우주공간.
그곳에서 나를 바라본다.
누워있는 내가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