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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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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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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BY 마음 2002-05-14

“지나간 얘기는 오늘로써 끝낼 생각이다. 너도 오늘까지만..... 알았지?”
“.........”
“왜 대답을 안 해?”
“무슨 대답?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엄마의 두눈이 날 훑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외면해 버렸다.
소주병을 잡았다.
잔에다 소주를 채우면서 다시 말했다.
“엄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엄마 마음이지 내 마음이야? 내가 무슨 자격이 있나? 내가 태어난 것도 내가 지금 엄마한테 내 아버지가 누구니 하는 이런 황당한 소릴 듣는 것도 모두 내 의사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일어난 일인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
“................”
“다 필요없어.... 다 필요 없다구......”
“현희야....... 왜 이러니? 갑자기 왜 이러니?”
“갑자기라고? 엄마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 생각 좀 해봐! 갑자기라고...?”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했잖니? ”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아버지 찾아 갈까? 내 아버지란 사람 찾아가 버릴까? 잘 산다며? 찾아가서 지금까지 모른척 했으니까 한 몫 떼어 달라고 해 보까?”
“누구한테 아버지라고 부르니? 아버지? 너 하고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그러면 왜 얘기를 해..... 왜? 왜?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런 것 때문에.... 힘들어 해야 하냐고.....?”
목젖이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현희야...... 현희야....... 우리 여기 떠나자. 응? ”
“왜? 준우 때문에? 준우하고 결혼이라도 할까봐서.... ?”
“준우하고는 이 쯤에서 그만 둬라. 처음에 그 소리 들었을 때에는 이렇게까지 심각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준우엄마 잘만 설득하면 될 줄 알았어....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었던 준우엄마라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속좁은 사람이라고 생각 안했으니까.... 누구보다도 친절했고 내 속 다 보여 주어도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었어.... 너도 준우엄마 알잖니? 말이 이웃이지 내게는 피붙이 같은 사람이었어. 네 할머니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할 때에도 나 대신해서 할머니 설득하려고 나서던 사람 아니니? 그런 사람이 준우문제 만큼은 그렇게 딴 사람처럼 하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나보고 부탁하더라. 언니 언니 그러면서.....”
“................”
엄마 말처럼 준우하고와의 관계만 정리가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굴 위해서? 두 엄마를 위해서? 아니면 준우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과연 그럴까?
“사랑은 꼭 부부로 맺어져야만 사랑인 것은 아니야.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다고 믿니? ”
“됐어! 그만해.... 그건 준우하고 내가 해결할 문제야.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미안해, 내가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어서....”
“미안해, 미안해..... 이젠 듣기도 싫어. ”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엄마의 얼굴에 하나 가득 들어차 있는 슬픔을 보는 순간 앗차하는 후회로 이어졌다.
하지만 엄마의 방문이 열리더니 헛깨비처럼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식탁위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이미 굳어져 버린 돼지고기가 불판위에 그대로 있었고 절여놓은 파절이며 상추, 깻잎들도 심지어 밥공기에 들어 있던 밥조차도, 우리가 뭘 먹었나 싶게 음식들은 처음 식탁에 차려질 때처럼 그대로였다.
후라이팬에다 참기름을 두르고 먹다남긴 걸 죄다 가위로 덤성덤성 자르고 고추장 한숟갈을 퍼넣고는 밥을 넣어 볶기 시작했다. 술기운인지 뭔지 모르지만 내 모상은 나 같기가 않았다.
나 아닌 내가 그러고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지만 후라이팬 채로 들고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엄마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다.
이불을 꺼집어 당기며 말했다.
“저녁 안먹어? 먹다 말았잖아....”
“됐어..... ”
“잘못했어.... 그러니까 일어나..... ”
“됐다니까.....”
“아이구 참! 그만해! 엄마! 무슨 엄마가 퍽하면 삐지냐?”
“아예 니가 엄마 해라....”
“지금 엄마하고 있잖아....”
“기집애! 성질머리하고는.....”
“뭐 그 성질 다 엄마한테서 나온거지...”
“하아...........”
긴 한숨이었다.
그 한숨속에 얼마나 많은 한이 숨어 있는지 내가 모를리는 없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