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00

[제29회]


BY 마음 2002-05-06

동생 역시 엄마의 한쪽 어깨를 덮어 안으며 콧소리를 낸다.
“우리 엄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나 부지? 나만 빼놓고선...... ”
“힘 안드냐?”
“재미있어. 나 아무래도 누구 가르치는 거 소질 있나봐.... 엄마, 이참에 학교 그만두고 이 길로 계속 나가보까? 입소문에 애들이 자꾸만 늘어나서 수입이 장난이 아니겠어....”
“학교 다니는 게 무슨 애들 장난이냐? 그것도 대학을 다닌다는 놈이.....”
“엄마는....., 또 앞서가고 있네. 농담도 못해?” 골목안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현화가 끼어 있는 자리는 항시 그랬다.
지금까지 이 아이한테서 느꼈던 감정들이 내가 알기도 전에 열등감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정말 오늘 무슨 특별한 날인거 아니야? 아무래도 이상해?....”
현화는 앞서서 현관문을 잡아 당기면서 말한다.
“오늘 엄마랑 오랜만에 술 한잔 했어....”
“근데 또 이건 뭐야..... 아직도 덜 끝난 모양이네..... 그렇다면 나도 끼어줘....”
현화는 내 손에 들리어진 것이 술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챈 모양이다.
“엄마! 어떻게....? ”
엄마에게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시작한 것도 엄마이지만 그 마무리는 분명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그 대답 대신에 시커먼 봉지에서 소주 두병을 꺼집어 내더니 다시 냉장고 갖다 넣어 버린다.그리곤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하자며 엄마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해져 버린 엄마를 의식해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현화는 여전히 코맹맹이 소리를 해대며 방으로 따라 들어가고 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는 현화에게 달래듯이 다음에 하자는 소릴 거듭해서 말하고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만다.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한테 이렇게 혼란을 주고는 당신 혼자서 당신만의 자리를 만들어 들어가 버리고만 엄마의 방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거리고 있다는 걸 엄마는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건 퇴근시간을 불과 몇 분 앞두고였다.
“난데 오늘 특별한 일 없지? 그러면 내가 여섯시에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릴께.” 엄마의 말투가 낯설다.
“왜....? 추운데..... ”“준우하고 약속은 없지?” 준우한테서 전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당분간은 들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나오지마! 마치는대로 빨리 들어갈테니까....”
“그럴래.... 퇴근해서 오다가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좀 샀거든. 그러니까 다른데 들렸다 오지 말고 빨리 와라....” 수화기 저편에서 전해져 오는 강한 흡인력이 무서운 부담으로 전해져 오지만 난 결코 거부할 수 없음을 안다.

어제하고 별반 다를게 없었다. 좀 다른게 있다면 엄마가 미리 상을 봐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중앙에 불판이 놓여져 있고 어제 사다 넣어둔 소주가 나오고 잔 두개가 저녁상위에 함께 올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어제의 연장선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불판 위에서 알맞게 구워진 삼겹살 하나를 집어다가 마늘에다 된장, 파절임까지 얹고는 상추쌈을 만들어 내 앞으로 뒤미는 엄마한테서 나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
여자로서, 그리고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로서 자식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얘기해야만 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그만 좀 굽고 엄마도 먹어.” 내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기를 구워내는 엄마한테 고작 한다는 소리였다.
그제서야 엄마는 소주 두 잔을 연거푸 입에다 털어 넣는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
“너도 한잔해라....” 다른 빈 잔을 불쑥 내밀면서 엄마는 긴 한숨을 함께 토해내고 있었다.
잔을 받아드는 내 손에선 작은 경련이 일어나고 있다.
숨을 몰아서 쉬어본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긴장은 쉽게 누그러지지가 않았다.
“현희야.....! 나는 정말 너한테는 ...... 너한테는........” 엄마의 말이 끊어졌다.
내뱉지 못하고 목 언저리에서 막혀버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도 남는다.
“엄마! 하아......! 나도 지금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나, 엄마 마음 이해해 주고 싶어.....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러지 않아도 돼....내 눈치 보는 거 하지 마! 응? 엄마가 왜 내 눈치를 보냐구?” 끝내 울음이 터져 버렸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그건 아마 엄마에게 보다는 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본능이었는지 모른다.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고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내 두 눈에 강한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보호막을 만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본능이었다.
“내 무덤속 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비밀이라는 게 없다고 하나보다. 준우엄마한테서 듣는 것 보다는 그래도 내가 직접 얘기를 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서 할 수 없이 시작을 하긴 했는데.... 현희야... 그런데.....”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니가 걱정이 되어서..... 니가 걱정이 되어서......” 가슴을 움켜잡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 속에서 흘려나오는 것은 눈물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그 가슴이 얼마나 미어질지 내가 아버지라면 아마 지금 엄마를 꼭 안아주고 다독거렸을 것이다.
한데도 나는 꼼짝도 않는다.
“현희야! 내말 명심해! 현화도 너도 아버진 하나야. 따로일수는 없어. 알았니? 그러니까 너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 사실이 너한테 털끝만큼도 고통을 줄 이유는 없어. 내 말 알아들었니?”
엄마는 다짐이라도 받을 생각인지 대답을 강요하는 눈치였다.
“........................”
하지만 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답대신에 받아 놓은 소주를 단숨에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쏴한 기분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고 있구나 했는데 그것도 잠시 다시 목줄기를 타고 불끈 달아오른 화기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먹어보는 소주도 아니건만 왜 이리 처량해 보이는지....
“현화한테는 절대 얘기 안 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너도 다른 표시는 내지 말았으면 좋겠어.”
“알았어..... 그런데 한 가지 물어 볼께. 내 생부라는 사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어?”
궁금했던 것 사실이지만 굳이 이렇게 물을 이유가 없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다.
“생부? 흐흐..... 생부라고 했니? 그 사람은 나하고만 상관이 있을 뿐이지 너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야. 궁금해 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야....”
“아직도 살아는 있어?”
“애 보래? 니가 왜 그 사람이 궁금한데....? 죽었어! 죽고 없어! 알았니? 아니 살아 있다 해도 그 사람은 절대 너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단 말이다.”
엄마의 목이 붉게 변해 있었다.
“너무 과민하게 그러지마! 나도 어린애 아니잖아.... 알건 알아야지.... 최근에라도 소식 들은거 없냐고.....?”
“그 인간, 그래 인간도 아니야, 인간이라는 말을 쓰는 것 조차 아까워, 지금 잘 살고 있어....아니 나도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해 주더라. 잘 산다고, 보통 사는게 아니라 아주 잘 산다고.... 부자 소리 듣는다고....”
“부자? 뭐해서 부자래?”
“뻔하지 뭐! 그런 놈들 하는 거 다 뻔한 것들 아니니? 얘기할 가치도 없는.....그만 해라 나도 그 인간 말만 나오면 피가 거꾸로 솟는 사람이다. ”
얘기는 시작도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소주 한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