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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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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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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BY 마음 2002-03-27

형광불빛 때문인지 엄마의 얼굴색은 오히려 점점 더 새하얗게 변해 가는 것 같다..
손을 대어보면 그 차가움에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려나 앉을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는 일도 더군다나 엄마의 얼굴을 만져주는 일 따위는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내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의심해 보지 못했던 사실을 간단한 확인절차 속에 다시 재확인을 시키는 듯한 엄마의 태도에 오히려 더 기가 막히고 놀라와서 그저 입안에 고이는 침만 간간히 삼키고 있었다.
“무작정 청량리로 가 경춘선 열차를 탔었다.
가방이라고는 잠깐 외출하려 나온 사람마냥 핸드백 하나 달랑들고.....
춘천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양반한테 그랬지...
깨끗하고 조용한 여관으로 데려달라고 했지....
다행히 친절한 사람을 만났더구나.
창밖으로 큰 포플러다너스 나무가 있는 한가진 곳에다 날 안내해 주더라....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뒤돌아 보면서 그러더구나. 편안하게 쉬고 가세요.....흐흐흐.........그래.... 다시 세상이 따뜻하게 보이기 시작했었던 거야.
하지만 다음날 나는 계획했던대로 소양강댐으로 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죽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진 않아.
단지 그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찾아 갔었지.....
이른 아침인데다가 날씨도 제법 찬기가 느껴지는 늦가을이었다.
인적조차도 없는 그런 한가진 곳에서 무심히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이제 죽어야 한다고.....
그렇게 할 생각이었고 꼭 그렇게 할거라고 나 자신에게 몇 번식이나 다짐을 주면서 찾아간 곳이었는데 나는 그만 눈을 감아 버렸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시퍼런 물을 보는 순간 덜컥 겁부터 나더라....
죽겠다고 생각하고 버스로 거기까지 찾아갔지만 그 시퍼런 물을 보는 순간 정말 너무 너무 겁이 나더라.....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게 내뱉고는 지나가더구나.
순간 기분이 상해서 뒤돌아보는데 그 남자도 동시에 뒤돌아 보는거야....
행색은 거의 거지행색을 하고 있었고 머리는 너무 길어서 반곱슬머리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정도였고.....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의 눈빛이었어....
아주 잠깐이었지만 난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미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엔 다시 내게 다가오는거야..... 그 사람 때문에 오히려 물로 뛰어들 뻔 했었지...
그러자 잠깐 뒤로 물러서더니 이번엔 나를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쳐다보더구나.
한참을 그저 쳐다보기만 하더니 느닷없이 자기를 따라가자고.....
처음엔 하도 기가 막혀서 웃고 있는데 죽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 줄 아느냐고 하면서
죽을 때 죽더라도 자기하고 술이나 한잔하고 죽으라고.....흐흐
아직도 이른 아침었는데다가 한기마져 들어서 사실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계속 머무를 수는 없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무지 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외진 곳에 혼자와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지.....
그 사람이 날 데리고 간 곳은 그 곳에서 불과 1킬로도 안되는 곳에 외딴 주점이었어....
하지만 그곳이 버스가 서는 곳이라는 걸 늦게서야 알았지만 덩그러니 방한칸만 달랑 붙어있는 그 허름한 술집으로 그 사람이 먼저 들어가더구나....
뒤이어 들리는 목소리가 어찌나 간들어지든지....
한데 이 남자가 그 젊은 주모에게 날 자기 여자라고 소개를 하더구나 ....
하도 기가 막혀 오히려 할말을 잃은채 그 사람이 부어주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우리는 한참을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훤한 대낮에 술을 마셨어.
그런데 말이다. 그 술이 사람을 정신없이 무너뜨리더구나.
비실비실 내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지..... 내내 내 뒤를 따라왔던 사람처럼 어떻게 그 사람이 내 눈 앞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된 것인지 모두가 꿈을 꾸는 것 같았으니까....
처음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어....
남자답게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이목구비가 시원했었으니까....
그런데 무엇보다 그 사람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말투였어...
아랫지방 말을 쓰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배운 사람 티가 나더구나.....
그리고 나에게 좀 건방진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막 대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그 때까지의 내 생활하고는 딴판의 사람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었어....”

술은 이미 오래전에 떨어졌지만 엄마는 더 이상 술을 찾지는 않았다. 다만 먹다만 김치찌개를 자꾸만 입으로 퍼 넣고 있었다.
내가 물을 떠다 주기도 했다가 내가 먹던 맥주를 권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짠 찌개국물만 자꾸 입에 떠 넣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 엄마를 보고 있는 내가 더 마음이 불안했다.
더 이상 얘기를 듣지 않아도 지금 그 낯선 남자가 내가 지금까지 내 아버지로 알고 있던 현화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도 남을 일인데 엄마는 굳이 내 앞에서 양파껍질을 까 내듯이 하나하나 차근차근하게 속을 까내고 있었다.
그 당시 엄마의 몸속에 내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 몸으로 또 다른 사내를 따라나선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아무말도 엄마를 향해서 던질수는 없었다. 지독스럽게 큰 병을 앓고 난 뒤 어쩌다 발코니에 나 앉은 사람마냥 엄마는 헛깨비였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순간 주방 전자렌지 위에 놓여 있던 작은 탁상시계로 눈이 갔다.
벌써 아홉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두어시간을 엄마는 딸인 나를 당신 앞에다 앉혀 놓고 지금껏 단 한번도 입밖으로 내어 놓은 적이 없었던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내 머리속엔 한가지 생각만 으로 가득차 있었다.
‘엄마는 분명히 현화하고 나하고 차별하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