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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위생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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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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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마음 2001-12-23

토스트에다 커피 한잔을 만들어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 엄마의 미닫이 방문이 열린다.
얼굴이 백짓장 같았다.
원래 흰 피부였지만 자고 일어나서 더욱 그래 보이는 건지 형광불빛 때문인지 모르지만 화장기 없는 엄마의 얼굴은 누가봐도 환자처럼 보인다.
목젖이 갑자기 마비라도 된 것처럼 아무것도 삼킬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오히려 엄마는 커피 때문에 니 얼굴이 그 모양이라고 도리어 화를 내고 있다.
“직장을 그만 두던지 아니면 그냥 졸업장만 따던지... 처녀 얼굴이 그 모양으로 해 가지고 쯧쯧...그리고 커피 그만 좀 마셔라. 뭐 그리 좋은거라고 밤낮 없이 커피냐. 그거 다 니 피 말리는 거야..”
“엄마나 제발 그만 좀 나가.”
꾹꾹 눌려 두었던 말이 갑자기 툭 튀어 나와 버린다.
엄마의 굳은 얼굴이 얼핏 미치는가 싶더니 이내 제자리로 돌아와 부드러워졌다.
“정은아. 엄마말 들어. 내가 누구 때문에 살고 있는지는 니가 더 잘 알잖어, 나는 니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거 더 이상은 못 보겠다. 직장 그만 두고 학원도 좀 다니고 해야 되는거 아니니? 늦게 시작한 공부니까 다른 얘들 보다 더 힘들꺼야. 두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할텐데,,, 그러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 알았니?”
“......”
대답을 강요했지만 나는 그 대답 대신에 아침 꼭 챙겨서 드시라는 말을 엄마가 아이한테 하듯이 하고는 출근길에 나섰다.
아직도 휭하니 나가 버리는 내 뒷통수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을 엄마 생각에 발걸음에 큰 돌 하나를 메달아 놓은 것만 같다.
아침마다 늘 느꼈던 것이지만 눈꺼풀이 무겁고 목 뒤가 뻐근하다.
이를 악문다는 말이 지금 필요로 하는 말인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까지 힘든 생활은 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좀 더 편하게 살 수도 있을텐데...

버스안에서 지나치는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하더니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가 입술까지 순식간에 타고 내려왔다.
고여 있던 눈물이 또 다시 흐를까 봐 눈을 더 크게 뜨고 있는데 그 답답함 속에서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있었다.

아랫목에 늘 누워 있던 아버지를 큰아버지가 들쳐 업고 아무말도 안하고 대문 밖으로 나가고 난 뒤, 뒤 따라 들어온 할머니는 네살박이 동생에게 박하사탕 한 봉지를 던져주고는 역시 휭하니 나가 버렸다.
동생은 딸줄도 모르는 사탕 봉지를 입에 물고 끙끙거리고 있고 나는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리어카에 실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그저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한테서 나는 이상한 냄새도 싫었고 뼈만 남아 해골 같은 아버지는 무섭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미친 듯이 울면서 큰집으로 내달렸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엄마는 그 밤에 십리 길을 단 걸음에 갔을 것이다.
나는 동생이 먹다가 남긴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그 사탕이 다 녹기 전에 엄마가 와 주었으면... 또 다시 사탕하나를 입에 물고 빨기를 십 수번, 동생은 아버지가 먹다 남긴 흰 살 죽을 조금 먹고는 이내 잠이 들었는데 그런 동생 정수 옆에 누워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었다.

겨우 일곱 살 밖에 안 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엄마는 할머니한테 또 당한 모양이었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었고 입고 있던 옷은 히죽이죽 웃고다니던 맘보처럼 하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와 준 것만도 내겐 큰 안도가 되었지만 아빠얘기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내 손을 꼭 잡더니 엄마 볼에다 문지르기만 하셨다.

그날 밤 엄마의 울음이 얼마간 지속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게 집을 떠나가버린 아버지는 그해 겨울, 큰댁에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