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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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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마음 2001-12-18

“누구? 엄마야?”
정수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섞여있다.
“아니? 나야...” 
나보다도 내 손에 들여진 비닐봉투에 먼저 눈이 갔다.
개나리색의 꽃무늬 침대카바에 이불까지 셋트로 맞춘 침대 위로 학교 앞에서부터 사들고 온 밤빵을 던져주었다.
“내 이럴줄 알고 안 자고 있었다는 거 아니겠사와요. 호호호호”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몸까지 배배꼬더니 주방으로 나가 커피물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잘 밤에 무슨 커피야? ”

“촌스럽기는... 꼭 아줌마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너 지금 잘거 아니니?”
“아냐... 나도 할일이 많단 말이야.”
“뭔일?”
“왜 나라고 할일이 없겠어. 책도 좀 봐야하고....근데 이 빵 도 거기서 샀지?”
쩝쩝 소리를 내어 가며 밤빵을 먹어대더니 느닷없이 물었다.
“왜? 우리 학교 앞에서 샀는데...”
“그 집 밤빵은 맛 없으니까 밤빵은 거기서 사지 말라고 했었잖어?"

“사다 줘도 난리야. 이리 줘. 내가 다 먹을 테니까...”
“말이 그렇다는거지... 그래도 다음부턴 이집에서 사지마...”
“알았다 알았어... 원 기집애도... 별라기는...”
동생은 읽다만 책을 다시 펴 들고는 턱을 괴고 엎드려서는 커피까지 마셔가며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수업을 끝내고 교문을 나서는데 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준우는 보이지 않고 제과점의 네온 불빛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동생의 먹성 때문이기도 했다.
먹는 낙으로 사는 아이 마냥 늘 먹을 것을 달고 사는 동생이 개중에서도 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빵가게 앞만 지나가면 동생 생각부터 나게 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아이가 먹고 있는 이 빵보다 마음껏 누리는 저만의 여유가 부러운 것이다.

우린 둘다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동생은 제 나이에 제대로 입학한 주간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이고 나는 삼년이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뒤 늦게 대학을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야간 보건전문대학 이년 과정이다. 학교만 졸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병리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자격증 취득 하나만으로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간 졸업생들 중에서도 2차 합격까지 해서 제대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이 거의 육칠십퍼센트 정도이다 보니 야간 학생들 중에선 포기하는 학생들이 허다했다.
단지 졸업장 정도 취득하는 걸로 만족들을 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나처럼 자격증을 꼭 따겠다고 마음먹는 학생들은 따로 그 만큼 더 열심히 공부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고 싶은데 그만두기에는 아까운 직장이라 그만 둘 수도 없는 형편이다.

눈꺼풀이 내려앉는 걸 간신히 참으면서 문제집을 꺼내어 다시 보고 있는데 문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보다 먼저 반사적으로 시계부터 쳐다 보았다.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각이다.
“엄마?”
“으응... 나다, 자니?”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 부드러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시간이면 지쳐 있을 목소리 조차도 엄마의 방만큼이나 깔끔하니 정돈되어 내게 와 안긴다.
하지만 엄마는 간신히 구두를 벗겨 내고 신발장과 거의 맛붙어 있는 식탁으로 가서 먼저 가디건부터 벗어 걸고 다시 스카프를 풀고 욕실로 들어가서 더운물로 오랜 시간을 정성들여 싸워를 할 것이다.
그리고 큰 타울 하나로 당신의 몸을 살짝 가리고는 오로지 알몸 하나로 엄마의 방으로 들어 갈 것이다. 늘 해 오던 것처럼...
단 한번도 거른적이 없는 엄마의 목욕은 지나치다 못해 이젠 성스럽기까지 했다.
젖은 머리칼을 말리는 듯 드라이기 소리가 잠시 나더니 이내 불이 꺼지고 잠자리에 든 눈치다.
도무지 누굴 닮았는지 양치질도 안하고 커피잔에다 먹던 빵 까지 죄다 머리맡에다 늘여 놓고 코를 박고 잠에 빠져든 동생도, 잘 밤에 머리까지 죄다 감고 헛껍데기는 모조리 방밖으로 밀어 놓고 알몸만 당신의 방으로 들어간 엄마도 나한테는 참으로 소중한 내 가족이고 그리고 몇 안 되는 내편이다.
그 몇 안 되는 내 편 중에 준우도 물론 끼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전문대학이라도 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준우 때문이었다.

 
처음 그가 원서를 들고 와서 내게 말해 왔을 때 먼저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그의 마음을 곡해 한 적도 있었다.
얼마나 사납게 대들었던지...
순간 상해 버린 내 자존심 하나 때문에 얼마나 그를 몰아부쳤는지...
처음으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뒤돌아서 나가는 준우를 보면서 밤새 울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만약 내가 야간대학을 다니게 된다면 자신이 책임지고 하교길에 늘 함께 해 주겠다던 약속을 지금껏 지키고 있는 그 준우가 지금은 오히려 내 가족들 보다 더 내게 힘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준우 생각만 하면 마음 한켠이 아리어 온다.
그도 나와 같은 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