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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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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마음 2001-12-17

머릿말
제 글이 습작이 될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름대로 커다란 의미를 두고 여기다 이렇게 올리긴 하는데 읽어 주시는 분들의 아량이 좀 필요 할 것 같아서 미리 죄스러움을 표하고 싶네요.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여러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제글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채찍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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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서기가 무섭게 누가 볼세라 나 먼저 앞장을 서고 두어 걸음 뒤에서 언제든지 준우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서 뒤따라 왔다. 언제나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걸을 수 있을까?
큰길에서 갈라진 사잇길로 접어들때면 잠시 그도 멈추어 눈인사를 했다.
오십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좁고 긴 골목안을 겨우 가로등 불빛 하나가 늦은 시각, 달빛 아래서 함께 허느적 거리고 있다.
골목에다 깔아놓은 보도블럭은 노면이 고르지를 못해 오히려 이런 밤이면 방해물만 된다. 걸을 때마다 휘청거리는 내 모상이 긴 그림자와 함게 춤을 추는 것만 같다.
이런 후미진 골목이 끝나갈 쯤에다 아랫채 방 두 칸을 얻어 이사 온 지 이태가 다 되어 가지만 이 골목 안의 습한 공기는 한결같다.
가슴에 핸드백을 가져다 끌어안고는 또각또각 한껏 여유를 부려 보는데 누군가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다.
숨을 몰아 쉬는 그 남자가 내 팔을 낚아채 한쪽 벽으로 밀어 세웠다.
준우의 얼굴이 옅은 불빛 밑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그대로 내 입술로 전해져 들어온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의 혀가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나는 정신없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휘청거리며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데 준우는 내 귀에다 사랑한다는 말을 애무처럼 남기고는 어느새 그 골목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사랑해...사랑해...
메아리가 남아 있는가,
돌아서서 나가는 그의 뒤를 다시 따라 나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내 머리를 대고 맘껏 비벼대며 그렇게 걷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 하지 못한다. 결코 그리 하지는 못할 것이다.

엄마의 방엔 오늘도 예외없이 깜깜했다.
그냥 지나쳐 들어오려다가 무심히 그 방문을 밀쳐본다.
어둠만 잔뜩 들어앉은 방이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짐작으로도 스위치를 찾고 불을 밝혀 어둠을 방 밖으로 밀어낸다.
하지만 주인 없는 방은 불을 밝힌다고 따스함이 대신해 들어올 수는 없는가 보다.
순간 가슴 한 모퉁이가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화장대에 가지런히 놓여진 화장품들이며 자고 일어나서 벗어 놓은 잠옷도 날개옷 마냥 옷걸이에 그 모양새를 그대로 들어내 주는 듯 걸려 있고 정성들여 오랜 시간을 사용했을 드라이기도 전선줄 하나 안 꼬이게 돌돌 말아져 제 바구니에 빗과 나란히 놓여있는 거며, 엄마의 방은 그려놓은 정물화처럼 늘 그렇게 제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반듯하니 놓여 있다.
언제쯤이면 엄마에게도 이러한 질서가 허물어질수 있을까?
티브이 위에 놓여진 작은 액자 속에서 아버지가 혼자서 웃고 있었다.
아버지 사진속에 유난히 두드려져 보이는게 있다면 두툼한 입술이다.
그리고 약간의 반 곱슬머리, 웃고 계셔서 그럴까,
어느 정도는 매력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의 얼굴이다.
낯설지 않은 얼굴인걸 보니 다른 형제분들하고 많이 닮았다.
특히 두툼한 입술이 그렇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당신의 외모조차도 전해주질 못했다.
동생하고 나 둘다 엄마를 그대로 빼다 닮았다.
거기다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도 전혀 없다.
엄마는 내가 왜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와 하는 듯 했다.
내가 일곱 살 나던 해 돌아가셨다는데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보다는 오히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 또렷하게 가지고 있다.
무서운 할머니...
엄마는 그런 할머니 앞에서 왜 그리도 늘 쩔쩔 매기만 했을까?
할머니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날더러 늘 엄마와 함께 뭉떵거려서 제 어미 같은 년이라고 해다 붙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