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학교 선배였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학창시절엔 선배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고 별다른 탈이 없다면 졸업을 하고 나서도 인간관계로서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물론 여자들이야 결혼을 하면 아무래도 뜸해지기는 당연하겠지만 내 남편은 그들중 한명이었다.
난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다. 평소에 말이 없고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우울해하거나 혹은 너무 웃지도 않았던, 그렇지만 그의 존재는 같이 몰려다니는 무리들 사이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없으면 허전한, 습관처럼 안부를 묻게 만들고 찾게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군대를 가고 내 마음을 전했지만 그 시간동안 딱 한 장의 엽서만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을뿐 내 기다림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조차 없었다. 그런채로 그가 제대를 할때까지 기다렸고 그가 취직을 했고 그 만큼 또 오랜 시간이 지났다. 결국 내 기다림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겐 야무지고 독하다 싶을 만큼의 오기가 있다. 그래서 그를 잊을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뒤 마주대하는 일이 생겨도 아무렇지않은듯 무척 담담하게 그를 바라볼수 있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무리 사이에서의 커플들도 생기는가 하면 혹을 헤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만나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 사람들처럼 명절에 만나고 생일에 만나고 또 다른 일들로 만났다.
친한 친구가 그들중 한명과 사귀고 있었다. 학창시절 부터 시귀었으니 오래도 갔다. 타고난 바람기질이 있는 친구인데도 용케 그 선배는 친구의 남자들을 참아내고 있었다. 친구는 늘 다정다감한 그를 내게 자랑했고 어느날은 그가 옷을 사줬다며 자랑을하고 어느날은 그가 자신에게 키스를 했다며 수줍게 고백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우리가 모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찰싹 달라붙어 애정을 표현하기도 서슴치 않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던가 친구가 약간 달라져 있었다. 조금 힘이 없었고 그늘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