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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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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BY 마음 2001-11-29

미스리가 근처 아파트로 방을 얻어 나갔다는 소리를 병원쪽 식구들 한테서 전해 들었다.
내게 미스리 얘기를 전해주던 또래 간호사는 방세가 그녀 월급의 삼십퍼센트도 더 되는 비싼 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다며 그렇게 해서 돈은 언제 모아서 시집은 또 언제 갈려고 그러는지...
걱정이 된다는 투로 말했다.
“놔둬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죠?”
“하긴... 자기 돈으로 자기 쓰는데 뭐라 할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데 미스리 병원 식구들 하고는 잘 지내나요?”
“잘 지내긴...물에 기름 돌 듯이 늘 그렇게 겉 돌기만 하지. 그것도 그 사람 성격인 걸, 어쩌겠어요.”
그렇지. 그녀의 성격인 것을,

제7장 그들만의 삶

윤미와 지내는 것도 처음처럼 설레이는 감정은 조금씩 퇴색이 되어 갔다.
하지만 윤미는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이 자신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처럼 힘들어 했다.
자꾸만 밖으로 산책을 가자며 조르기도 했다가 창문을 열고 그 차가운 겨울공기를 가슴 깊이까지 들이마시곤 했다.

윤미와 함께 산지 겨우 한달도 채 안된 어느 날,
나는 평소 그녀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을 언뜻 해 보았다.
그러던 차였는데 역시 그녀가 날 자기 앞으로 끌어다 앉히고 커피 한잔씩을 마시자고 했다.
무슨 말인가를 입에다 넣어 두고는 쉬이 그말들을 꺼집어 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너한테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얘기가 있어.”
그녀의 표정이 심상잖다.
“나 정신과 치료 받고 있어.”
그녀의 말은 집행언도를 내리는 것처럼 짧고도 충격적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분해가 되어 버린 것처럼 멍해져 버렸다.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 정신과 약 먹고 있단 말이야.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것 같아서 미리 얘기해 주는 거야.”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가 윤미가 아닌 것만 같았다.
“어쩌다가... 왜? 왜? 니가.....”
“매일 먹는 것은 아니야. 나도 이젠 내 몸 상태를 어느 정도 알거든. 그래서 그 조짐이 보일때만 먹어.”
“그런 조짐?”“그래, 의사 말로는 우울증이라고 했어. 식욕저하나 불면증 같은 증상이 시작 되면 약을 먹어야 된대.”
“그래... 그랬었구나...그래서 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었구나...”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
그녀가 안주 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몇 번씩이나 떼를 써댔던 걸 생각하면...
“윤미야.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해서 눈물을 보이기 까지 했다.
“아니야. 그런 말 하지마.
나도 그 누구한텐가 그러한 말을 한적이 있었어,
그는 남자였지만 그래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지.
그 친구도 그림 그리는 환쟁이였어.
나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실력있는 사람이었지.
한데 그는 도무지 자신한테는 아무것도 바라질 않아.
그 무엇도 심지어 여자인 나한테도...
나는 그 친구를 남자로서가 아니라 서로의 정신적 교감이 가능한 유일한 내 동료로 생각했었어.
하지만 나는 어느새 그를 닮아 갔었지.
닮아간다는 것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너도 날 닮아갈까봐 그게 겁이 났던 거야.
어느 날 나는 그 친구의 방에서 거의 이십사시간을 변기통을 끓어 안고 산적이 있었어.
나중에 피까지 올라오더라.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그제서야 정신이 좀 나대,
나는 타이밍이라는 알약,
너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수면제 말고 잠 안 오게 하는 약 있잖아.
그런 걸 조금씩 사다 모은 적이 있었어.
그땐 단순히 그림 그리기 위한 일종의 객기로...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것을 한 시간 간격으로 먹어대기 시작한 거야.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그랬는지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기분이 어느 정도로 변할 수 있는지 궁금해 진 거야.
일종의 호기심이었지.
그리고 한 시간 간격으로 내 기분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어.
거의 정신이 없어서 까물어칠 때 까지...
결국엔 그 친구 등에 없어서 병원으로 실려 가고...
병원에선 나를 내과 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같이 겸해서 보게 하더라.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내게 던진 첫 질문이 뭔지 아니?
‘무슨 생각으로 약을 먹었냐고...’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궁금했다고...
그러니까 허허 웃더니 두말 안하고 정신과 치료 좀 받자고 해서 그날부터 나는 그 의사에게 내 사생활을 낱낱이 고해 바쳐야만 했어.
그림 그린다고 했더니 고호 같은 사람 흉내낸 것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르지.
맞아 그럴지도 몰라. 나는 누군가를 흉내 내고 있었던거야.
지극히 평범해지는 내가 싫어서...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힘이 들었어.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게는 내 몸의 기를 전부 다 모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곤 했었지.
그러다 보니 늘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거야.
혼이 들어 있는 그림! 난 그림은 늘 그렇게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어."

그녀는 나였다.
그녀의 생각은 어쩜 그리도 날 닮았을까?
내가 그녀를 닮아 가는게 아니라 그녀가 날 닮아 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미희야. 한데 나는 이제 뭘 좀 알 것 같애.
한 때라는거 말이야.
결국은 한때야.
나보다도 더 미쳐있던 그 남자 친구 어떻게 된 줄 아니?
기어이 그것 때문에 병 얻었어.
폐결핵이래. 얼마 전에 여기도 잠깐 다녀 갔어.
너 한테 보여주려다가 그 친구가 싫어 할 것 같아서 그냥 보냈어.
얼굴색이 너무 안 좋았거든...
걱정이 좀 돼. 안 되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난 그 친구를 이제 내 과거속으로 보내기로 했어. 지나간 시간속으로...”
윤미는 코끝을 집게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렸다.
난 그녀의 눈을 애써 피했다.

그녀의 어깨가 잠깐 떨리는가 싶더니 애써 자신의 속을 누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뒤로 가서 안아 주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의 머리에서 사과향이 났다.
언젠가 맡아 본 듯한 낯익은 냄새였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 해 주었다.
가슴 한언저리가 미여지듯이 아파왔다.
그녀에게 지나간 것들이 아픔이라면 이젠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하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고 둘 다 푸석한 얼굴로 아침에 눈을 뜨고는 싱끗 웃어 보였다. 멋쩍은 듯이...

나는 일부러 부지런을 떨어서 제대로 된 아침밥상을 차렸다.
국도 끓이고 김치부침개도 한 장 부쳐서 다른 날 보다도 더 여유있게 그것들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면서 내가 최근에 사다놓은 ‘조지윈스턴의 12월’을 들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다.
그녀가 한때 어떤 아이였든,
나는 그녀를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고 자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