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윤미 그녀와 함께 방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서로에게서 나왔다.
보건소 식구들 몰래 다리품을 팔아가며 추운 줄도 모르고 방을 구하려 다녔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퇴근을 하고 오늘은 그냥 숙소에 남아 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일찌 감치 방을 닦고 대강 저녁 끼니를 떼우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직원 목소리다.
순간 긴장하고 후다닥 밖으로 나가 보니 지난번 미스리 방에서 나오던 그 김주사였다.
가슴이 뛰는 걸 누르며 왠일이냐고 태연하게 말했다.
“박양한테 내가 할 얘기가 좀 있어서...”
“말씀 하세요.”“여기서?”
“....”
나는 그를 거부한다는 표현을 내 눈에 다 모아 노려 보았다.
“거 참! 성격 한번 희안하구만.. 누가 잡아먹나, 얘기 좀 하자는데...”
“날 밝은 날 사무실에서 하시든지 여기 서서 하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세요.”
그리고는 들어와 버렸다.
그가 되돌아가면서 무슨 소리인가를 중얼거린다.
나는 더 이상 숙소에 있을만한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대강 보따리란 걸 샀다.
하룻밤이라도 밖에서 보낼만한 짐을 꾸려서 윤미를 찾아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서야 숙소로 되돌아 왔다.
하지만 나는 내 눈을 의심하는 끔찍스런 광경을 보고 말았다.
내 방문이 그대로 들려져서 손만 대면 뒤로 넘어지도록 번쩍 들어다가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내방의 그 노오란색 비키니 옷장의 지퍼까지 죄다 뜯어 놓았던 게 아닌가.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결코 이것은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출근과 동시에 직속상관 강주사를 내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곳의 그 장면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 자리에서 강주사에게 말했다.
이번 일은 그냥 안 넘길거니까 그리 알라고 ...
그리고 숙소에서 나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스박 그 월급 가지고 방세 주고 연탄 때고하면 뭐가 남는다고... 왠만하면 여기 그냥 있지. 김주사 그 사람 술이 문제야. 술만 들어 가면 개가 되거든...”
그 쯤에 내가 거들었다.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요. 이렇게 된 마당이니까 말씀드리는건데 그날 미스리 방에는 왜 들어갔어요.?”
“아, 그날? 요사이 미스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도 말들이 많아서 주의도 좀 주고 그럴러고...”
“....”
그를 아무 말없이 쳐다 보기만 했다.
“내가 미스리 오빠란 사람을 좀 알거든, 지역은 달라도 같은 계통의 공무원으로 있어서 ....”
그는 막내 동생 같은 내 앞에서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자니 심기가 영 아닌 눈치다.
그를 더 이상 몰아 부치는 일은 결코 나한테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강주사의 말을 믿어 주는 것처럼 하고 더 이상 개의치 않았다.
그일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미스리와의 얘기는 차마 어느 누구한테도 입 밖으로 내 뱉을 수없었다.
미스리 말처럼 나만 우스운 사람 될 것은 뻔 했다.
김주사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저 내게 해주는 말이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다만 모른척 하기로 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처녀의 몸으로 기거를 하겠다고 했던게 잘못이지... 미친개한테 한번 물린셈 치지 했다.
그리고 그녀와 맞붙어 싸우는 일은 이제 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이미 알아 놓은 방으로 보란 듯이 이사를 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나와 윤미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자취방이 꾸며지기 시작했다.
둘이가 함께 얻는 방이라 제법 방다운 방이었다.
부엌도 꽤 넓고 방 크기도 침대를 두고 살아도 됨직한 그런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신혼들이 방을 얻으면 이런 곳에서 시작들을 했을 것 같은 그런 방이다.
가구라곤 내가 숙소에서 가지고 나온 앉은뱅이 책상, 그리고 비키니 옷장이 전부였고 윤미는 화구집이 전부였다. 그리고 각자가 지닌 몇 권의 책들이 그 큰방 한 귀퉁이를 차지 할 뿐이었다.
우린 나란히 시장을 갔다.
무엇보다 윤미가 침대를 원했다.
그녀가 그림을 집에서도 그릴수 있게 화실처럼 어느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어야 했기에 무엇보다 온돌식 보다는 침대가 훨씬 편할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가 더블침대를 싸서 결혼할 때까지 쓰면 그걸 혼수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면서도 그냥 그러라고 했고 나는 그 대신에 작은 책장을 사고 작은 오디오 하나를 월부로 구입을 했다. 그것만 해도 방이 제법 방다와 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그렇게도 듣고 싶어 했던 은반을 몇 개 사 들고 들어오면서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둘은 나란히 커피를 마시고 모차르트, 베토벤의 곡들을 오디오로 들으면서 행복에 젖어서 아무 것도 부러울 게 없는 듯 했다.
우리는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열정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일 같이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고 나는 책 일기에 몰두했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러 다니고 벌써 십여년이나 된 기타를 집에서 가지고 와 함께 노래 부르고 함께 밥 지어서 머리를 맞 대고 밥도 먹고...
미스리가 방을 얻어 나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다.
강주사는 그 이후로 나에 대해서 매우 사무적이었고 좀처럼 농이 섞인 말은 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