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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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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BY 마음 2001-11-27

제 6 장 어둠속으로

환하게 웃으며 누군가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낯익은 얼굴이다.
어색한 몸짓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아는척을 한다.
지난 가을 학기로 복학을 한 청년회원 중의 한사람,
나이답지 않게 해맑은 미소를 가졌던 사람이다.

처음 이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알게 된, 그것도 여름철 한때 잠깐이었지만 그가 내게 보인 관심은 남달랐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이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언제든지 내 옆에 있었던 것 같다.
마음 맞는 몇몇들만 움직여도 그 속에 늘 끼여 있었고 그 지나간 여름에의 기억에도 늘 그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아...아... 방학이구나! 그래 방학이야!”내 목소리에 반가움이 잔뜩 베여 있다.
“잘 지냈어요.?”
그가 눈에 하나 가득 웃음을 보인다.
“벌써 한 학기가 지났네. 요사이 캠퍼스 공기는 맡을만 해요?”
내 마음에 그리움이 어느새 피어 오른다.
“다시 가고 싶죠?”
“당연히.... 정말 다시 갔으면 ... 싶어요.”
“나는 아닌데...복학생의 설움 그 말도 못해요. 다들 나보고 아저씨 아저씨한다니까요.”
짓궂은 그의 표정이 그대로 변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나보다도 두 살이나 더 먹었다는데 오히려 아우 같기만 하다.
교회 언덕길을 내려 오면서 그는 내가 보고 싶었는데 나도 그랬냐고 묻는다.
나는 순간 피식 웃었다.
장난끼 속에 묻혀 버린 그의 말을 대답까지 할 필요가 없다 싶었다.
그리고 오히려 누가 듣지나 않았나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아이고. 여전하시구만...”
“뭘요?”
“내 입으로 말 못 하지요. 내숭이라고...”
순간 하마터면 그에게 발길질을 할 뻔 했다.
하지만 나는 삐쭉 입을 내밀고 눈을 흘겼다.
“봐요. 내숭이지.”
“나 점점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계속 그럴거예요.”
“아니 아니...전혀...그냥 집으로 갈 거에요?”
“그럼?”
“글쎄요.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가기가...”
그는 풀쩍 풀쩍 점프를 하며 날 막고 섰다.
“그러면 집까지 아니지 보건소 까지 바래다 줘요”
“좋아요. 옛날 생각도 좀 하면서...”
“ 뭐 누가 들으면 옛 애인이라도 온 줄 알겠네”
“뭐요? 그럼 아닌가?”
“애인은 무슨 애인?”
“에이, 언제 또 마음이 바뀌었나. 우리 보통 사이 아니지 않나요?”
“점 점...”
나는 그와 함께 길을 걷는 것이 좋은 느낌이었다.
하얀 입김을 후후 불어 가며 오랜만에 히히호호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미 기억 안나요?”
미술학원 앞을 스쳐 지나오면서 무심결에 윤미 얘기를 꺼집어 냈다.
“왜 몰라요. 여전히 여기 다니나요.?”
“네. 여전히...”
잠깐 그녀가 지금 여기에 있을까, 왜 청년회 예배에 안 나왔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는데 그 복학생 남자가 말한다.
“나 오늘 낮에 윤미씨 봤는데...”
“낮에요?”
“한 세시쯤...그런데 손님이 온 것 같던데... 이쪽 사람 같지는 않고 여행 다니는 사람 같았어요.”
“그래요...”
누굴까? 이 먼 곳까지 그녀를 찾아서 올 사람이... 여행 왔다가 들렸겠지?
그는 연신 날 웃길려고 노력했고 그런 그의 모습이 찬 겨울 밤의 깨끗한 공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돌려보내고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거의 아홉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세수를 하기 위해 더운 물을 바가지에 떠서 수돗가로 나와 막 세수를 하려는데 미스리 방쪽에 말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나 싶었지만 이 밤에 직원일리는 없고 텔레비전 소리이겠지 했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오고 난 뒤에도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분명 얘기 소리였는데...
그러고 보니까 요사이는 만돌린 소리도 안 들리고 교회도 안 나가는 눈치다.
저 아이를 어떻하나,
안 보고 살 수도 없고 어쩌다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사무적으로 인사하고 그리고 뒤돌아 설 때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서로의 등을 보여왔다.
겨울인데... 지금이라도 방을 알아 볼까?
연탄을 피우는데도 방안의 공기는 도무지 데워지지가 않았다.
우풍이 세서 겨울엔 강주사가 걱정이라고 그러더니만 이불 깔아 놓은 자리 거기만 따뜻했다.
책을 보고 싶어도 손 끝이 시러워서 호호 불어 가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책을 보다가 서글픈 생각이 또 나를 엄습해 들어와 그만 집 생각이 절실해 진다.
지난번 미스리 방에는 석유난로가 들어와 있었는데 나도 그거라도 하나 사야 그나마 이 겨울을 지날 것만 같았다.
시간이 제법 지났다 싶은데 눈은 여전히 말똥말똥해 있고 잠을 청해 볼까 싶어서 불을 끄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스리방에 바깥 미닫이 유리문 소리가 요란하게 드르렁 거렸다.
순간 수돗가에서 들었던 말소리가 생각이 나 우선 불부터 빨리 끄고 창가에 서서 그녀방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누군가가 그녀의 방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이런 숙소에 이 야심한 시간에...
누굴까?
그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런데 그가 누구인지를... 그것도 현장이 그대로 내 눈에 목격이 되었다.
그녀의 바깥문을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주사였다.
내 직속상관, 나는 그 자리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우리는 잠깐이었지만 그 표정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전부 다 보여 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완전히 외면해 버렸다.
무섭게 그를 노려 보았고 그 역시 내 표정에서 그것을 읽어 냈을 것이다.
그가 뒤이어 한마디를 툭 던진다.
“할 얘기가 좀 있어서... 그런데 미스박은 왜 이렇게 늦게 다녀? 지금 시간이 몇신데...”
그의 말은 내 상관의 위치에 변함없이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