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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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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BY 마음 2001-11-23

윤미가 우리 숙소에서 잠을 자고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자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그녀가 자고 가면 안 되느냐고 물어왔고 나나 윤미나 따로 방을 얻어 살고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어느쪽이나 잠자리까지 제공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매일 자고 가는 것도 아니고 내일은 또 일요일이라 직원들 출근이 겁나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외출하는 것 보다 배 깔고 누워 책 보는데 더 마음이 가 있을 때였다.

자정이 다 되어 갈 쯤에 윤미를 꼬들겨 라면을 끓여 먹고,그러다 보니 들락날락 거리면서 웃음소리도 제법 나갔던 것 같다.
옆방에 미스리가 있는지 없는지 불은 켜져 있는데 인기척 하나 없더니 느닷없이 그녀방이 있는 쪽에서 유리 깨어지는 소리가 아찔할 정도로 날카롭게 듣겼다. 그것도 연이어 두 번씩이나...
분명히 인위적으로 내는 굉음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문 밖으로 나왔고 뒤이어 윤미도 겁먹은 눈을 하고 함께 따라 나왔다.
미스리, 그녀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다만 내 방쪽으로 보이는 허연 시멘트벽 아래로 산산 조각이 난 소주병이 널부려져 있었다.

나는 가슴부터 쓸어내렸다.
그리고 방망이질 해대는 가슴을 움켜 잡고 어찌할 바를 몰라 윤미쪽으로만 보고 있는데 그때 숙직실 쪽으로 나있는 쪽문이 벌컥 하고 열리더니 두명의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 사람은 가족보건 담당계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임시로 잡일도 보고 함께 숙직도 함께 해주는 윤군이었다.
아직도 아이 티가 나는 윤군이 먼저 달려왔고 나는 계장님부터 중간에서 되돌려 보내야만 했다.
큰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나한테도 불찰이 없었던게 아니어서 될 수 있으면 무마시켜야 할 일이었다.
윤군은 어리지만 심성이 곱고 우직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그들 윤군과 미스리 사이에 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윤군은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얼결에 당한 기분이 너무도 섬칫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 미스리 그녀를 밖으로 끌어 내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데 깨어진 유리를 쓰레기통에 담고 세심하게 그것들을 비로 쓸어 말끔하게 정리를 하는 동안 방안에서는 숨소리 하나 안 듣겼다.그녀의 그 뻔뻔함을 내 그냥 넘길 수 없어서 막 미스리를 부르던 찰라에 윤군이 날 가로 막았다.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고 오히려 주의를 주고 그냥 모른척 하란다. 그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해서 나도 더 이상 나설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윤군도 그렇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윤군의 저 깊은 속을 내일 꼭 물어보리라 마음먹고 그날 밤을 보냈지만 윤미도 미스리 라는 여자가 보이는 그 괴기스러운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날밤 우리는 그렇게 떨리는 마음이 진정이 제대로 안되어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윤군을 보자마자 커피부터 한잔 빼 들고 가서 토요일밤 얘기를 불쑥 꺼집어 냈다.
윤군은 그 큰 눈으로 내가 하는 말에 잠깐 쳐다 보기만 하더니 아침인데 이런 얘기 하기가 좀 그렇네요 했다.
나는 큰 정보라도 기다리는 사람 마냥 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요즘은 연탄 아궁이 때문에 자주 미스리 부엌에 들락거렸거든요. 하루는 바닥에 너무도 어수선 하게 여러가지 것들이 잔뜩 늘여져 있고 해서 치울까 어쩔까 하고 있는데 미스리가 오더니 느닷없이 내게 남의 사생활 들여다 본다며 화를 내지 뭐예요. 그래서 소장님이 우리들 걱정해서 자주 들여다 보라고 했다고 했더니 갑자기 내 손목을 끌고 자기 방으로 들어 갔어요.”
나의 상상은 그 다음으로 훨씬 넘어 가고 있는데도 그의 말은 왜 그리도 느린지... 하지만 조용히 그의 눈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처음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어요. 한데 나를 부른 이유가 다른데 있는게 아니라 그냥 친구가 필요 했다고만 하고는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미스박도 그 사실 알고 있어요. 담배 피우는 거?”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는 대뜸 “미스리 왜 그런데요? 다 큰 처녀가...” 라고 말해 놓고는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랬다고,
너무 약해 보여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토요일 밤에 있었던 일도 미스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최근 들어 미스리 부엌에 빈 소주병이 매일 같이 나왔거든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떻할려고 그러는지... 그래서 매일 제가 치워줬어요.“
그의 표정이 얼마나 순박한지 웃음이 터지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의 목소리엔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물기가 촉촉했다.
“그날은 미스박은 친구분까지 와서 시끌벅적 한데 미스리는 분명 혼자서 또 술을 마셨을 거예요. 왜 미스박도 그 사실은 알고 있죠? 병리과 김기사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거,”
“으응..”
“저도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갑자기 끝내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미스리가 저러는 거예요?”
오히려 그가 내게 묻는다.
“나도 잘은 몰라.설마 그것 때문이기야 할려구."
"미스박이 좀 얘기해 봐요. 저러다가 어째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나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서 거기 다 대고 뭐라 다른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날 윤군 아니었으면 난감했을 거라고 고맙다고 말하고 그를 돌여 보냈지만 미스리에 대한 내 불안은 끝이 나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