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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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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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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마음 2001-11-17

전 직원 회식이 있었던 날이다.
미스리가 몸 담고 있는 병원쪽 사람들과 처음으로 함께 하는 자리였다.
병원쪽 직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처녀 둘이서 한방을 쓴다는 사실에 묘한 호기심을 불려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둘이 혹시 레즈비언은 아닌가 몰라!”
술 기운 탓일까?
그들이 농담 삼아 내 뱉는 말들이 그다지 불쾌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리 생각들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그녀와 내가 한 값에 매겨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왠지 두 사람이 좀 닮은 구석이 있단 말이야. 미스 리는 그렇다 치고 미스 박은 원래 그렇게 조용한 편인가.”
두꺼운 안경테의 산부인과 과장은 점잖은 어조로 슬쩍히 말을 건네었다.
“.....”
나는 대답하는 대신에 받아 놓은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갑자기 우리 손목을 잡아 끈 사람은 소아과 의사였다. 성격이 호탕하니 목소리도 체격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뭘 하나? 이 꼬마 아가씨들아! ”
무대 위로 끌다시피 해서 내다 세우고는 이미 그 분위기에 젖어 있는 낯익은 여직원들 속으로 들어가 한바탕 몸을 흔들고는 유유히 무대 밑으로 빠진다.
나는 처음 그런 자리에 서 본 사람처럼 어색함을 도무지 감출수가 없었다.
음악부터가 지루박인지 디스코인지...
부엌에서 밥하다 금방 불려나온 사람처럼
슬리퍼 차림의 중년 아줌씨는 제 흥에 겨워 지루박 스텝을 용케도 잘 따라 밟고 있었다.
한차례 밴드가 홀 안을 가득 메우는 연주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블루스 곡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스스르 풀어져 달아 나는 듯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는데
미스 리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아직도 무대 위에서 빙글 빙글 돌고 있었다.
그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녀의 뒷모습이 어쩜 그리도 날씬한지...
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종아리에 하이힐은 작은 키의 그녀에게 그다지 밉지않을 만큼 그녀의 다리를 미끈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것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무얼 꿈꾸고 있는 걸까?
술에 취한 건지 잠에 취한 건지...
아무튼 그녀의 행동이 그날 이후로 어떤 말들을 뿌리고 다닐지...
나는 무언가에 한방 얻어맞은 기분으로 멀거니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2장 선악과
그녀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그날 이후부터인 것 같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소주 한병을 사들고 들어와선 함께 나눠 마시자고 졸랐다.
사다 놓은 컵라면 하나를 따서 그걸 안주 삼아 나눠 마셨던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사다 놓은 커피잔에다 조금씩 나눠서 홀짝대며 마셨던 것이 조금씩 자신의 얘기를 풀어 놓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그녀가 느닷없이 키스해 봤냐구 했고 이런 맹랑한 아가씨 질문에 나 역시도 술기운의 힘을 빌려 지금 우리 나이가 몇인데 그것도 못해 봤겠냐구 큰 소리를 쳐댔다.
“키스를 해 봤다구? 거짓말! 그 말은 정말 못 믿겠네.”
“왜 내가 어떻게 보이는데?”
“난 처음 너 보면서 우리 큰언니 보는 것 같앴어.”
“큰언니?”
“그래. 처음 니가 나한테 한 말이 무엇인지 기억나니?”
"..."
“몸무게부터 묻더라. 내가 사십이 안 된다고 말 했을 때, 넌 혀까지 차면서 날 측은해 했던거...”
“그랬나? 아무튼 그때 너는 한 마리 사슴 같앴어. 그것도 길잃은 한 마리 어린 새끼사슴!”
미스리는 슬그머니 나갔다 오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그 속엔 소주가 두병씩이나 들어 있는게 아닌가.
“야! 너 이거 설마 다 마실 생각은 아니겠지?”
시커먼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두병의 술병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스 리는 대답 대신에 그녀가 사온 두병 중에 하나를 따고 있었다.
“원래 그렇게 술 마시는 걸 좋아 했었니?”
“원래부터 좋아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