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빈손으로 쫓겨나와 어렵사리 전라도 광주의 외곽지역에 은영이네가 꾸려가는 구멍가게의 2층집 방한칸에 또다른 방한칸의 도박꾼 부부와 우리 가족의 도시 생활이 시작되었다.
딸 둘을 둔 은영이 엄마는 아이들이 잘못하면 한겨울에도 옷을 훌러덩 벗겨서 욕을 퍼부으며 집밖으로 내쫓곤 했다.
할수 있는 일은 몸으로 떼우는 것 밖에 모르셨던 아버지는 건축 노동을 하며 힘겹게 생계를 유지해 나가셨지만 우리 가정은 그런대로 행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동네에는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갑자기 학교도 쉬고 하늘에서는 전단지 들이 날라 다녔다.
나는 친구들과 누가 더 많이 잡나 게임을 하며 놀았다.
붉은 페인트칠을 한 트럭에서는 바가지, 빗 등 생활용품을 마구 나눠주며 다녔다. "뭐 이런 즐거운 일이 다 있을까!" 트럭을 뒤쫓으며 참 별난 곳도 다 있구나 싶었다. 광주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재미있는 놀이도 잠시...
어느날 숨가쁘게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빨리 짐을 꾸려야 한다고 했다.
다른 고향사람들은 벌써 다 떠났다면서 우리는 영문도 모른체 어른들을 따라 보따리를 쌌다. 야밤에 광주를 빠져나가려 조바심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정작 해질무렵에는 보따리를 다 풀어야만 했다.
먼저 떠났던 사람들이 경계지점에서 모조리 걸렸다고 했다.
우리집 바로 뒤 언덕에서는 군인들과 사복차림의 젊은 사람들이 양쪽에 엎드려 총질을 해댔다.
"군인들이 애, 어른 할것 없이 모조리 죽인대. 만삭인 임산부들도 칼로 찔러 죽였대."
동네 사람들 모두 무서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군인들만 보면 모두들 몸을 웅크리고 말이라도 걸어오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어떤 이들은 막걸리 대접을 하며 아부를 하기도 하였다.
전쟁터 한가운데 노출된 우리집에서는 안심할수 없어 밤이되면 우리 가족은 조금 떨어진 작은 할아버지 댁으로 몰려갔다.
아버지는 집을 지킨다며 옥상과 처마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망치로 무장하며 밤을 보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총탄불빛은 마치 불꽃놀이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그게 정말 불꽃놀이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며칠이 지나고 아버지는 밖의 동정을 한번 살피고 오신다며 나가셨다.
아침에 나가신 분이 해가져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어머니는 안절부절 어쩔줄을 몰라 하셨지만 나는 맏이로써 아빠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사촌 고모댁에 가보기로 했다. 제발 군인들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골목으로, 골목으로 숨을 죽이며 다니던 나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한발을 떼는 순간 무서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무서운 모습도...
군인아저씨들이 모래주머니를 잔뜩 쌓아놓고 총 부리로 나를 노리고 있었다. 군인을 만나면 무조건 죽는줄만 알았던 나는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뿐 눈동자조차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지긋한 군인아저씨가 와서는 "얘아, 위험하니까 돌아다니면 안된다. 얼른 집에 가거라." 하시는 거였다.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있는 힘을 다해 집을 향해 뛰었다.
'저런 아저씨도 계시는구나! 다행이다'...
한밤중이 다 되어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작은 할아버지집에 맡겨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가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아무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기에 나는 낮에 간간히 오는 트럭에서 빗도 줏으러 다녔고 전단지도 열심히 잡으러 다녔다.
며칠뒤 엄마는 도청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고 했다.
총에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의 꿈에 부풀은 도시 생활은 그렇게 짧게 끝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