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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어설픈이 2001-11-06

주리는 노란물을 흘리며 비에 젖은 낙엽을 발로 지긋이 밟아가며
코트주머니에 언 손을 집어 넣는 다. 재미있다는 듯이 주리는 비에
젖어 바람에 날라 가지도 않을 낙엽을 도망가지 못하게라도 할모양으로 자꾸 힘주어 밟으며 걸어가고 있다. 그러는 것도 잠깐..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어 본다. 어느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여 한숨을 몰아쉬면서도 답답함을 못이기는 지 자꾸 주머니며 가방을 뒤젖는 다.
주리는 누구라두 붙잡고는 담배한가치를 달라고 하고 싶었다. 이렇게 답답할 때면, 담배한모금이면 가슴을 쓰러내릴수 있으련만 아까 택시에서 마지막 남은 담배를 피웠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을 삭히기 위해..보고 싶은 은서를 가슴속 저깊히 묻어두기 위해 토악질을 해가며 배운 담배였다. 그런 담배이기에 주리는 배고픈 아이처럼 담배를 연신 찾았다.

"은서야~ 이리와 얼른 밥먹어"아이는 대답이 없다. 바쁜 아침이면 꼬마 은서는 더 늦장을 부린다. 대답없이 tv를 보고 있는 아이를 끌어다 식탁에 앉히고는 "왜 이렇게 엄마말을 안들어, 얼른 먹어야지 유치원차를 탈수 있잖아" 그래도 은서는 아랑곳하지않고 딴청만 피운다. 그런 은서를 놔두고 주리는 안방으로 간다. 늦장부리는 또 한사람을 마저 챙겨야 하기때문이다. "자기야, 오늘 뭐 입고 갈래? 오늘 같이 따뜻한 봄날엔 하늘색 와이셔츠에 음.. 이거 어때?" 뭐그리 생각이 많은 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민이는 대답한다. "아니야, 내가 골라 입을 께. 넌 은서나 챙겨" "아니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당신 뭐 고민있어?" "아니야, 나한테 신경쓰지말고 은서한테나 가봐" "어~ 오늘 당신 이상하다. 아니 요 며칠 계속 이상하네? 고민있음 얘기해야지, 감추기 없기로 했잖아, 무슨일인데? 응, 자기야?" 그래도 대답없이 민서는 안방으로 욕실로 다니기만 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리는 은서를 데리고 아파트엘리베이터앞에 섯다. 은서가 이따가 늦지 말고 마중나와달라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을 하곤 멍하니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 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봄햇살이, 하얀 주리의 손등으로 목덜미로 얼굴로 따사롭게 비추이고 있었지만 주리는 아랑곳하지않고 아무런 생각없이 아이를 차에 태워 주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민이의 행동이 너무도 싸늘 해 남처럼 느껴지는 요즘, 자꾸 불길한 생각이 주리의 마음을 답답하게만 한다.
은서를 데려다 주고 오는 동안 민이는 가버렸는 지 집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 적막함에 주리는 소름이 돋았다. 주섬주섬 집안 일을 해놓고 안방으로 갔다. 외출이 하고 싶어졌다. 할일을 챙기고 샤워를 하고는 막 화장을 하고 있는 데,'따르릉,따르릉' 받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 경선일꺼라는 생각에 집어든 수화기에선 시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늘 김치좀 새로 담그려고 하니깐 지금 준비하고 와라, 내 다리가 아파서 시장을 못보니 니가좀 다녀와야지, 살것좀 내 적어놨으니깐 집에 들러서 시장보고, 알았냐? 애가 왜 대답이 없어. 싫어? 암튼 와, 삼십분이면 오쟈?" 너무도 어이가 없는 주리는 대답도 못한 채 그냥 수화기를 내려놨다. 내려놓고 생각해보니 어머님이 오해할것이 분명해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화장도 외출도 시댁은 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민이의 행동이 주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불길했다.
정신을 들어보니 시댁문앞이었다. 택시를 타고는 왔는 데, 왜 여기에 서있는 지 모르는 주리는 자신을 너무도 한심스럽다고 생각했다.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초인종을 누르고 열리는 대문안으로 주리는 들어섰다.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머리가 아파오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날것 같았다. 얼른 시장볼 쪽지를 받아들고는 시장으로 갔다. 시장에 가서도 아침에 민이의 행동과 며칠전 민이의 고등학교동창모임때 일이 생각이 났다. 민이의 동창이라고 하면 같은 모임인데도 왠지 같이 가잔말을 하지 않는 민이였고, 들어와서도 별말없이 작업실로 들어가는 민이였다. 뒤따라 들어가 은정이 왔었냐? 경철이는, 지영이는 왔었냐, 애선이는 오늘 어떻게 하고 왔었느냐고 물어봐도 별다른 말이 없던 민이였다. 그전에는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3차가는 동안 옆에서 잠만 자더라는 둥 재미나게 말도 잘하던 민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귀찮다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민이를 보고 주리는 안좋은 일이 있었나 생각했었다.
은서가 유치원에서 올시간이라면서 서둘러 시댁을 나서는 데 왠지 눈물이 났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은 속이 메슥거려 간신히 돌아왔다.
아이를 데릴러 나가다가 아파트현관앞에서 은서친구 하늘이의 엄마를 만났다. "왜 이렇게 얼굴빛이 안좋아요? 이따 애오면 우리집에 와요. 아니다 내가 우리 하늘이하고 은서 마중가서 데리고 집에 가있을 테니깐, 집에 가 좀 쉬었다가 우리집에 놀러 와요. 아까 내가 호박죽좀 해꺼던. 냉동실에 있는 거 빨리 없앨라구. 얼른 가서 쉬어요. 얼굴이 너무 안됐다." 하고 총총히 사라지는 하늘이 엄마를 뒤로 하고 집에 올라온 주리는 며칠 잠을 못잔 사람처럼 잠이 들었다.
바깥에서 문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전화벨소리에 초인종소리까지 집안이 어지러웠다. "아휴, 집에 있었네요. 은서가 집에 가고 싶다고 보내놨더니 엄마가 문을 안열어준다고 다시 왔더라구요. 그래서 전화도 해보고 했는 데 전화도 안받고 무슨 일인가 했지.. 우리 집에 더있어도 되는 데 우리 신랑이 오늘 따라 일찍 들어와서요."고맙다는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렸는 지 꼬지레한 은서를 씻기고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엄마, 나 배고파" "그래 우리 은서 밥먹자"
은서가 하늘이네서 무엇을 하고 놀았다는 둥.. 하늘이네 엄마가 호박죽이란걸 주셨는 데 맛이 이상했다는 둥 .. 재잘재잘 떠들어대지만 주리에겐 웅웅거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은서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잠을 재우고 나니 어느 덧 10시가 넘었다. 출근한 이후로 전화가 없는 민이에게 주리는 전화를 걸었다.
"네, 윤민입니다." "자기, 나야. 어디야? 들어올려면 아직 멀었어?"
"어, 아직 사무실인데, 조금만 하면 끝나니깐 집에 가면 한 11시..12시안으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어, 알았어요. 저녁은 먹었어?"
"응, 직원들이랑 아까.." "응. 조심해서 들어와요" 그랬다. 민이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괜한 불길함으로 주리는 하루종일 마음고생을 한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