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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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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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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byelover 2001-10-27

제1화
"보헤미안 랩소디"

"아저씨!담배 한갑 주세요".
"..네"
남자는 영은을 아래위로 쭉 한번 훑어보고는 내키지 않는듯한
표정으로 주방쪽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영은은 커피에 설탕을 세스푼 가득 퍼서 넣고는 휘이익 저어본다.
그리고는 코앞에 컵을 바짝 댔다.
갓뽑은 원두커피를 기대한 그녀의 코는 실망한듯 이내 바닷가쪽을
향한다.두꺼운 유리창너머 희미한 웃음으로 영은을 맞아주는
검은 바다...내가 너무 늦은거니?그런거야?
진한 담배내음에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담배를 들고 서 있다.
"고맙습니다."
생긴건 참한것이 담배는 무슨놈의 담배냐며 못마땅해하는듯한
남자의 눈빛을 느끼며 영은은 오히려 그에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저씨!그런식으로 사람 볼거면 담배 팔지마세요.
담배피시는 분이...좀 우습네요."
"네?아니 난 그게 아니라..."
갑작스런 그녀의 대꾸에 남자는 당황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피했다.
옆테이블에 앉아있던 대학생인듯한 여자손님이 뒤늦게서야 한마디
거든다.
"잘하셨어요.언니!저 아저씨 고등학생들한텐 안그러면서
꼭 여자한테만 그래요.피."
아직 어린애티를 벗지 못한듯한 그녀의 얼굴이 사랑스러워보였다.
갑자기 말도 안되는 걸로 여성평등을 주장하는 어리석은 투사가 된
것같아 쑥스러워졌다.
영은은 괜히 머쓱해져 비어있는 물컵을 두손으로 감싸며
문득 어두워진 카페안을 둘러보았다.
보수적인 주인남자와 전혀 어울려보이지않는 이국적인 인테리어에
갑자기 웃음이 났다.
오래되어보이지만 꽤 센스있고 분위기있는 목조장식과
어두운듯하면서도 묘한 안정감을 주는 조명들...
분명 처음인 이 카페는 언젠가 한번 와본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다.
어정쩡한 주인만 빼면..
"야!너 왠일이냐?이렇게 일찍...?!"
낯선 남자의 음성에 영은은 순간 가슴이 죄어드는것 같았다.
민재...?
영은이 뒤돌아보는순간 낯선남자는 영은의 곁을 스쳐 바쁘게 누군가를
향해 손을 들어보인다.
후.그렇지.그가 올 리 없지.그는...

영은은 카페안을 안개처럼 휘감는 음악에 취해 마시지도 못하는
진한 칵테일을 한잔 더 청했다.
'니가 떠나면 나도 세상에 없는거야.
넌 나야.난 너고...그리고 니가 내 세상이야.'
그의 마지막 대사였지.
"혼자 오셨어요?"
주인과 시간교대를 한 젊은 사내가 몇시간동안 말없이 혼자 앉은
영은이 적적해보였던지 말상대라도 해줄 모양으로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네."
새벽2시까지 영업이라고 적혀있는 네온을 다시한번 쳐다보곤
영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취기가 오르는것 같다.
혼자 여길 오는게 아니었어.지금이...?
영은은 무심코 손목을 내려다보다 혼잣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눈치빠른 남자는 "지금 시간보실려구요?"하며 영은의 여윈 손목을
보며 따라 웃어보인다.남자의 볼에 볼우물이 패여 귀여워보였다.
"12시 조금 넘었어요.아직 마칠 시간은 아니니 걱정마세요.
오래간만에 외출하셨나봐요."
술기운이 올라서 그런지 평소에 낯선 사람이 말 건네는것을 유난히
싫어하던 영은은 젊은 사내의 말건넴이 그다지 싫지 않다.
오래간만의 외출...? 아직 때이른 나의 외투때문에 ...?
오히려 남자의 질문이 궁금해지기까지한다.
영은은 피다 남은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려다 순간 멈칫했다.
그가 나에게 가르쳐 준 지저분한 이 습관.
그를 떠나있어도 군데군데 묻어있는 그의 모습으로 영은은 갑자기
슬퍼졌다.
칵테일을 마시기위해 바로 자리를 옮겨앉은뒤로 손님이 뜸해졌다.
갑자기 젊은 남자가 영은의 앞으로 다가왔다.
"저,듣고 싶은 음악 있으시면 틀어드릴께요."
영은의 대답을 기다리다 겸연쩍어졌는지 사내는 자기가 고른 음악을
튼다.
음악이 흐르자 영은은 갑자기 몸이 굳어짐을 느꼈다.
그의 음악이었다.
나를 위해 불러주던 그의 애절한 노래였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은의 볼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