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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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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안개 2001-11-29

아직 새벽 바람이 차다.
여섯시부터 아파트 근처 은행나무 아래에서 그 남자가 나오길 기다렸다.
간간이 출근 차량이 지나간다. 조금 지나자 그 남자가 나오면서 아파트 경비 아저씨한테 인사를 한다. 한손엔 역시 신문지가 들려있다.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가장이라고 생각하겠지?
두리번거리면서 걸음을 빨리한다. 횡단보도도 아닌데 차도를 건너더니 어느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 남자가 행여 라도 매일 마주치는 내 얼굴을 기억할까봐 모자를 푹 눌러썼다.
누군가 나를 보면 어디 놀러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남자의 재빠른 반응을 따라잡기 위해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내 손엔 회사 사람한테서 빌린 카메라가 들려있다.
그 남자가 들어간 골목길을 살핀다. 영락없다. 지붕위로 전봇대가 보인다.
전봇대나 주차해 논 차, 육교는 남자의 좋은 아지트가 될 것이다. 이 근처는 눈에 잡힐 듯 훤하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어설프게는 안한다. 며칠동안 미리 골목골목을 훑어봤으며 그 남자가 잘 가는 곳을 몇번 따라다녀 봤으니까.
골목길엔 동네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몇 번 주물럭 거리다가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조금있다가 스스로 후퇴할 것이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다음 장소는 내가 미리 앞질러 가서 기다려도 된다. 육교 밑은 오랫동안 머무르는 곳이니까 육교 앞 다세대 주택, 그 남자가 모르는 골목길을 알아 놓았다.
그 곳은 육교 밑에 있는 그 남자가 정면으로 보이고 이 쪽에서 사진찍기에도 적합한 곳이다.
골목길에서 기다리니 아니나 다를까, 육교 밑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척 두리번 거린다.
저쪽에서 교복입은 여학생 두명을 보더니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신문지를 펴서 읽는 척한다.
이때 한 손은 신문지 안에서 슬슬 바지의 지퍼를 내릴 것이다.
햇빛을 보니 후래쉬는 사용 안해도 된다. 카메라 렌즈로 강도를 조절하고 줌을 눌러 피사체를 앞당겼다. 찰칵 소리에 내 몸이 짜릿하다.
여학생이 지나가자 뭐라고 말하며 여학생을 부른다. 아마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했을 것이다.
여학생들이 고개를 돌리자 손짓을 한다. 여학생 둘이 서로 마주보며 자기네들끼리 무슨말인가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엔 남자가 무슨말을 하며 들고 있던 신문지를 내리고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번쩍 들어올린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나는 너무도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삼십 년이 넘도록 남자의 성기를 정면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리가 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확대할 필름엔 정확하게 나올 것이다.
여학생들이 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걸 보고 남자의 손길이 빨라진다.
잠시 후 출근길에 마주치는 평범한 남자가 되어 빠른 걸음으로 육교위를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