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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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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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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안개 2001-10-12

유라 옷 좀 사줘. 영 난민 같잖아.
유라와 단 둘을 남겨 두고 며칠 동안 집을 비운 뒤에 돌아와서 남편은 대뜸 말했다. 그래도 내옷 중에 그 중 좋은 옷을 주었는데 난민 같다니 입안이 뻑뻑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언니는 돈 벌어서 다 뭐해요. 옷도 안 사 입고.
회사 동생이 한 말이 생각났다. 회사에도 여직원은 몇 명 있다. 그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집에 있기 답답해서였다.
나 처럼 내가 아니면 우리는 먹구 살기가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머리를 만져봤다. 퍼머하기도, 그렇다고 머리끝이 삐죽이 나올 때마다 다듬어 주어야 하는 커트조차도 부담스러워 기르고 다니는 긴 머리.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미용실에서 퍼머 할인 티켓이 왔다. 모두들 싸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남편이 긴 생 머리를 좋아해서.
난 그들에게 둘러댔다.
그 돈은 우리집 일주일치 생활비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였다.
월세로 몇 년 살다가 전세로 돌린 게 삼 년 전이었다. 남편은 다 큰 마당에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철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며 부조로 들어온 돈으로 월세 보증금을 했다. 공과금은 왜 그리 많은지 전기와 수도를 아끼고 공중전화를 이용해도 내야 할 돈은 줄어들지 않았다.
밖에서 차 소리가 멈췄다. 밖으로 나가 보니 경희가 택시에서 내린다. 손에는 무었을 샀는지 쇼핑백이 양손에 다 찼다.
언니, 하늘이 자?
경희는 쇼핑백을 마루에 던지며 옷을 벗지 않은 채로 아이를 안는다.
니가 보고 싶어서 밖에 오래 있을 수도 없다 이젠...
경희는 아이를 들썩이며 웃는다. 행복하다 저 모습은.
뚱뚱해져서 입을 옷이 하나도 없어. 내꺼 사는 김에 언니 것도 샀어. 언니 사이즈는 그대로지? 올라갈 때 입어.
쇼핑백 하나를 건네준다. 나 같으면 부기가 빠질 동안 아무거나 걸칠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무작정 내려오느라 변변히 짐도 챙기지 못했지만 시간이 있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게다. 경희 눈엔 이런 내 모습이 걸려서 핑계김에 샀을 것이다. 그 애의 마음은 알지만 받고 싶지 않다.

"그런애는 또 갈거에요. 지가 좋아서 하니까요. 걔네는 언니들도 함부로 못해요. 손님들이 걔네 땜에 오는데..."
남편이 출장 갔다 온 얘길 하자 유라는 대단한 사실이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젓가락을 휘저어 가며 얘길 했다.
너 생선을 잘 먹는구나.
남편이 그 애 앞으로 조기 접시를 밀어주며 말했다. 생각하니 아까부터 난 반찬도 집어먹지 않고 있다.
저런 애들 때매 청소년 문제가 더 심각해.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정신없게...
내가 가요 프로라도 볼라치면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던 남편이 유라가 노래를 따라 부르자 너 모르는 노래가 없구나,했다.
피곤해서 먼저 잘게. 남편은 못 들었는지 뒤도 돌아보질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회사에 휴가서를 제출하자 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청림, 다니엘 가구 다 넘어갔어. 이젠 집성목이나 일반 오크로는 안돼. 지난번에 실험했던 인레이(In-lay),그걸로 하기로 했어. 그렇다면 우리모두 매달려도 힘들다구. 레이wu 기계 들어올 때까지만 쉬어." 안된다고 하면 사직서라도 낼 판이었다.
"쉬는 동안 매플, 체리하고 알더, 페어를 적절하게 배치해 봐. 도안은 출근하는 날 가지고 오고." 실장은 끝내 내키지 않은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하며 과제를 하나 주었다.
토요일도 아닌데 너무 일찍 나오니까 막상 갈 데가 없었다. 얼마전에 경희가 아들을 낳았다고 했는데 집에나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후 세시까지 영화 한편 보고 서점이며 공원엘 실컷 돌아다닌 뒤였다. 집에 갔다 오겠다고 남편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유라가 받았다. 협회에서 그랬단다. 정간사 와이프 목소리가 무척 밝고 젊어졌다고.
유라가 계속 전화를 전화를 받자 난 줄 알고 누군가 한말이었다. 나 보다 그애의 목소리는 밝았고 가늘었다.
오빠 자는데...유라는 내가 남편을 찾자 이따가 하면 안되냐고 했다.
밖에서 전화를 해서 남편을 바꿔달라는 나와, 집에서 전화를 받아 그의 처지를 설명하는 유라는 분명 바뀐 모습이었다. 그 애가 멀리서 오빠...오빠...하는 소리가 들렸다. 할 말이 없어졌다.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나야....하는 남편의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