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게 이렇게 고운 빛깔 일수 있을까?
물기를 머금어 약간은 푸른빛을 띠는 기저귀 중간이 애기 똥풀 짓이겨 놓은 듯하다.
물을 한껏 세게 해 놓고 샤워기로 뿜어 대니 금방 원을 그리며 흩어져 버린다.
헹구려고 함지에 넣은 기저귀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마치 화장지를 풀어놓은 것 같아 만지면 뭉개 뭉개 흩어질 것만 같다.
기저귀 끝이 풀어지지 말라고 파란실로 시침 해 놓은곳이 물줄기에 따라 해초같이 움직인다.
중간을 잡아서 반으로 모으고 또 그 중간을 잡아서 모으고, 마침하니 손아귀에 딱 잡히는 느낌이 좋아서 몇 번을 반복했다.
얼마나 흡수력이 좋은지 손에 있는 물기까지 빨아들인다.
"고생스럽지만 여 있는동안 니가 기저귀 빨래 좀 해줘야 쓰겄다. 드러운 빨래하던 손으로 그 하얀 기저귀를 빨래니께 아무래도 꺼림직 안하나"
엄마가 축축한 기저귀를 던져 주면서 나한테 말한 건 이곳에 온지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기저귀는 축축했지만 따뜻했고 묵직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나는 했을터였다.
날씨가 참 좋다. 마당 한쪽에 빨랫줄이 보였다. 기저귀를 저기에다 널어야지 싶다.
요즘은 이불이나 말리기 위해서 가끔 쓰여질 색 바랜 빨래줄이다.
줄을 잡아당기니 먼지가 폴폴 날린다.
여러가닥으로 꼬여 있는 나일론 줄은 한두 가닥이 끊어져도 안전하다.
걸레 하나를 물에 축여 줄을 닦았다. 예전엔 토요일만 되면 저 줄이 교복이며 일주일치 양말로 꽉 찼었는데.
손이 아프도록 짜도 물이 뚝뚝 흐르던 무거운 빨래 때문에 행여 줄이라도 끊어질까 봐 가운데에 기다란 막대기를 받혀 놓았었다.
기저귀를 탁탁 털어 집게를 꽂아 놓으니 마당이 온통 훤해 보인다.
오랜만에 기분이 상쾌하다. 경희같으면 선전에서 처럼 손을 번쩍 쳐들고 빨래끝! 했을 것이다.
집안이 조용하다. 이곳에 온지 사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집안 구석구석이 낯설다.
이십년을 살았던 이 집이 3년째 살고 있는 전세 아파트 보다도 어설프고 불편한건 왜일까.
방안에는 경희가 안기를 안고 곤하게 자고 있다. 보일러를 내리까 하다가 방문을 닫고 마루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기저귀가 바람에 춤을 춘다. 커피를 한잔 하고 싶다. 어제 사온 봉지 커피를 어디다 두었더라.
벌써 금요일이다. 생각해 보니 어버이날도 그냥 지나쳤구나.
유라 말로는 남편이 어제 온다고 했으니까 지금쯤은 일어났을 것이다. 내가 우리집의 전화번호를 누르는건 너무나 낯설다.
밖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 본적이 몇번 있긴 했다. 민수씨가 들어왔을까?
그냥 자지 말고 식탁에 차려 놓은 밥 먹고 자라고 걱정스럽던게 어제 였었나.
신호가 몇번 가도 받질 않는다. 유라는 어딜 갔을까.
아기가 깼는지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잠잠하다. 경희가 젖을 물리나 보다.
관둬. 저러다 끊기겠지.
출장이라도 갔다 오면 남편은 집요하게 파고들며 말했었다.
전화선 저쪽에선 마치 우리 둘을 보고 있기라도 하듯 남편만큼이나 집요했다.
신경쓰지 말고 좀 움직여봐.
그럴 순 없다. 일어나서 전화코드를 뽑으려고 하면 그가 먼저 수화기를 들곤 했다.
커피 한모금을 한참동안 입에 물고 기도로 냄새를 맡는다.
그의 벗은 등을 바라보며 전화가 끊기길 기다리는 내가 보인다.
부모한테 인계 했잖아.
남편은 짜증스럽게 말한다.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아 난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그런데 그게 왜 우리 책임이래.
남편은 자기 등을 한번 획 젖히더니 몸을 일으켰다. 내 몸이 휘청 침대 밑으로 곤두박질 칠 것 같다.
전화기를 들고 잇는 손이 가늘게 떨린다. 누가 이기나 해볼까. 빨리 받아.
신호가 뚝 끊어지며 유라가 네?한다. 가쁜지 숨을 몰아쉰다.
왜 전화를 이제 받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다.
언니?
아, 저소리. 언니라는 말만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목욕했어요, 오빠....
아저씨는? 그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뭘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오빠 자길래 깰까봐 전화벨을 작게 했더니 잘 안들렸어요.
그애는 이제 겨우 숨을 골랐는지 예의 그 밝은 소리로 속삭댔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이 떨린다.
목욕을 했다구?
저애와 남편은 어쩌자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