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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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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BY 매미 2001-09-23


-16-


내가 갑자기 소리치자 아빠는 깜짝 놀랐나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재빨리 엄마 입 속에 든 동전이랑 생쌀을 전부 꺼냈답니다. 휴~ 큰일날 뻔했습니다. 아빠는 진짜 바보야! 엄마가 좋아하는 걸 줘야지...

참, 물고기가 있었지! 나는 비닐봉지 안에서 잘 구워진 물고기를 꺼내 엄마 입 속에 넣어주었답니다.

"엄마, 이거 내가 잡은 물고기다! 엄마 주려구 싸왔어. 맛있지? 그지? 응? 뭐라고 말 좀 해봐 엄마!"

엄마는 내가 준 물고기도 먹지 않습니다. 씨, 엄마 주려구 가져온 건데... [맛있구나!] 하고 한 입만 먹어주면 되는데...

"엄마, 맛없어? 그럼 다른 거 갖고 올까? 오늘 우리집 잔치라서 맛있는 거 되게되게 많아. 뭐가 먹고 싶은데... 응?"

"에구! 이 철없는 것아... 엄마는, 니 애미는... 에구! 불쌍한 것... 흑....흑..."

"왜 그래? 할머니 또 울어? 이번엔 왜 울어? 엄마가 너무 예뻐서 우는 거야?"

"그래... 오늘따라 니 애미가 너무너무 이쁘구나... 너무... 이뻐서... 에구! 이것아..."

열려진 방문으로 차가운 밤 공기가 넘어들어 옵니다. 겨울에 문 열고 자면 감기 걸리는데... 걱정된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아보았답니다. 얼마나 떨었으면 손이 얼음장 만지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추워하는데도, 아빠는... 문을 닫던가 아니면 이불이라도 덮어주지 바보 같은 아빠는 뒤돌아 멍하니 앉아만 있습니다.

바보 같은 아빠! 미워 죽겠어...

"엄마, 추워? 잠깐만..."

다락문을 열고 이불을 꺼내서, 엄마를 덮어 주고는 나도 엄마 옆자리로 쏙 들어가서 엄마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추운 날 밖에서 놀다가 온몸이 꽁꽁 얼어 들어오면, 자리를 깔고 엄마랑 같이 누웠습니다. 차가운 손이랑 발도 엄마가 따뜻한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며 이렇게 요렇게 비벼주면 금방 몸이 풀리고 따뜻해졌었는데...

오늘은 엄마가 춥다고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녹여줘야지...

"이제 따뜻하지? 오늘은 내 손이 엄마 손보다 더 따뜻하네. 자,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어때? 따뜻하지? 그치? 헤헤헤..."

좀 지나자 얼음장같던 엄마 손이 조금씩 따뜻해집니다. 얼굴빛도 발가소름 해진 것이, 몸도 어지간히 풀리나 봅니다. 내가 엄마한테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줄 만큼 자라서 다행입니다. 헤헤헤...

"아, 엄마 손이 따뜻해졌다! 엄마, 나도 다 컸지? 헤헤헤..."

갑자기 할머니가 실성한 노인네처럼 땅바닥을 두들기며 울자, 삼촌들이랑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따라 웁니다. 아빠는 손바닥으로 뻘게진 얼굴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우는 모습을 들키는 게 창피한 모양입니다. 나 참, 다 큰 어른들이 큰소리로 엉엉 따라 울다니... 이제는 마을 어른들까지 이상합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엄마 귀에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습니다.

"엄마, 다 큰 어른들이 막 운다? 아빠도 막 울어. 엄마랑 영미만 안 우는데...
나, 엄마랑 약속한 거 지켰다? 엄마가 그랬잖아! 엄마랑 떨어져 살아도 울면 안 된다구... 더 씩씩하게 지내라구...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가 보고싶어도 절대로 울지 말라고 그랬잖아! 그러면 엄마가 영미 만나러 오겠다구...
나 그동안 엄마 보고싶어도 참고 안 울었다! 현아랑 인형놀이도 하구, 성만이랑 썰매도 타구 얼마나 재밌게 지냈는데... 참, 엄마! 나 글자공부도 했어. 내 이름이랑 아빠이름이랑 엄마 이름이랑 전부 쓸 줄 알아. 나, 착하지?
나 엄마랑 한 약속 다 지켰으니까, 이제 엄마가 나랑 한 약속 지켜야 해! 돈 많이 벌어서 나 데리러 온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도장 찍고 약속했잖아... 엄마, 영미 입학식 날 꼭 다시 올꺼지?
그리고, 엄마... 참, 다행이야... 오늘이 잔치라서... 엄마 얼굴도 볼 수 있구... 엄마, 오늘이 잔칫날이라 영미는 너무너무 좋아... 엄마도 좋지... 헤헤헤...
엄마, 사랑해..."

엄마랑 나란히 누워서, 열려진 방문 틈으로 깜깜해진 하늘을 바라봅니다. 밤하늘에는 건빵에 뿌려놓은 별사탕 같기만 한 진짜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엄마가 제일 아끼는 까만 치마에도, 지금 같은 밤하늘 별무늬가 촘촘하게 박혀 있답니다. 엄마가 그 치마를 입으면 일부러 치맛자락을 붙들고 별무늬가 정말로 떨어질까 흔들어 보곤 했는데...

잔칫날 밤하늘은 엄마 치마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별들이 꼬리를 끌면서 진짜로 떨어지는걸 빼면 말입니다.

엄마, 오늘하루 정말정말 재밌었어... 근데, 엄마... 오늘 누구 잔칫날이야? 엄만 알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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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렇게 긴글은 처음써 봅니다.
원래 끈기가 없는 편이라
마무리를 했다는 그 자체에 만족했는데,
지금은 부족한 글이 마냥 부끄럽네요.
좋은님들의 따끔한 충고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좋은말씀 해주신 부초님과
어설픈 제 글을 읽어주신 님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철지난 매미 **^^**